칼럼니스트인 역사학자 제임스 캐럴은 1일 일간 보스턴 글로브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당시 원자탄 사용을 거절한 트루먼의 ‘자제(restraint)’ 결정은 현재의 위기상황과 깊은 상관 관계가 있다”며 트루먼 대통령 결정의 역사적 영향을 재해석했다.
제임스 캐럴은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종종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려지지만,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은 전쟁이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한국전 당시 핵무기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의를 소개했다.
1950년 6월25일 개전 직후 유엔군의 이름을 내걸고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눈부신 전과를 올리며 북한군을 38선을 넘어 중국과의 국경지대인 압록강까지 격퇴시켰다.
하지만 중국은 그해 11월 수십만명의 인민해방군을 참전시켜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을 한반도 남쪽으로 퇴각시켰다.
맥아더는 “전황(戰況)은 미군이 해상으로 철수해야 할 정도의 긴급사태”라고 보고하며 트루먼 대통령에게 원자탄 폭격을 허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호인트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소련에 대한 선제적인 핵공격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훗날 “2천500만명에 달하는 비전투 시민들의 살상을 명령할 수 없었고, 3차 세계대전을 개전할 수는 없었다”고 회고했듯 원자탄 사용 불허결정을 내렸다. 이듬해 4월 맥아더 장군은 해임됐다.
미군은 용맹하게 버텼고, 결국 38선까지 다시 밀고 올라갔다.
캐럴은 “트루먼은 전면전을 택하느니 승리를 포기하는 길을 택했고, 거기서 비롯된 한반도의 교착상태는 오늘날까지 남.북한 사이의 문제를 규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루먼이 ‘잊혀진 전쟁’에서 원자탄 공격 명령을 거부한 것은 일부 역사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는 ‘잊혀진 결정’이 됐지만, 그 영향력은 항구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역사적으로 최악의 패배에 직면한 최후의 순간에 트루먼이 원자탄 사용을 거절한 것은 오늘날까지 핵무기 사용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를 지속시키고 있다고 캐럴은 분석했다.
군사적 측면에서 원자탄 사용이 회의적인 상황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탄 투하 명령을 내린 트루먼이 오히려 원자탄 사용이 군사적으로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한국전에서는 원자탄 사용을 거절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는 것.
캐럴은 “원자탄 사용이 초래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았을 때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다른 핵무기 보유국은 핵무기 사용을 용인할 수 없는 행동으로 간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캐럴은 “만약 트루먼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간에 한국전때 핵공격을 강행했다면 아마도 이후에 또 다시 핵무기가 사용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