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대중·顧問
본인이 의도했건 아니건
박근혜씨는 이 대통령과 진검대결에 나선 형세다
박씨가 원한 승부처이고 MB가 뽑은 칼인가?
두 사람에게 국민들은 민망하다 못해 지겹다
세종시(市) 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박근혜씨가 겪게 될 정치적 파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의 박 전 대표가 대국민 약속을 내세우며 세종시의 원안추진을 천명하고 이명박 정부 방침에 정면 대항하기로 한 이상, 양단간에 그에 따른 정치적 결과를 피해갈 수는 없게 됐기 때문이다.먼저 박씨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수정안, 즉 자족형 도시가 관철될 경우, 박씨는 커다란 정치적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의 대통령에의 꿈에 지장을 줄지도 모를 만큼 박근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
박씨의 주장대로 법개정이 무산되고 원안대로 추진될 경우, 박씨의 입지는 정권 내는 물론 정치권 전체에서 크게 넓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 행보는 바로 대선(大選) 모드로 돌입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그 순간부터 '식물 정권'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집권세력의 분열로 힘을 잃게 되는 데다 내년 지방자치 선거에서도 패배할 경우 한나라당 정권은 사실상 기능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럴 때 같은 집권세력의 한 축으로서의 박씨만 안주하리란 보장은 없다. '친박'이 당권을 장악해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말해 이 대통령과 박근혜씨는 본인들이 의도했건 아니건 이번 세종시 문제로 이 대통령과 진검대결에 나선 형국이 됐다. 이제 상황은 세종시의 발전에 어느 안(案)이 더 기여하느냐는 본질문제와는 별개로 MB 대(對) 박근혜의 정치적 대결로 치닫게 됐다. 여기가 박씨가 원한 승부처인가, 이것이 MB가 마침내 뽑은 칼인가? 아마도 그것은 아닐 것이다. MB와 박근혜의 끊임없는 갈등구조가 빚어낸 불행한 하나의 막극(幕劇)이겠지만, 여기에 개헌문제까지 겹치면 이제 두 사람은 서로가 피해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 대통령에게는 야당이 둘 있다고들 한다. 하나는 민주당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씨다. 이 대통령 처지에서 박씨는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천적 같은 존재일 것이다. 박씨측에서는 이 대통령을 기회주의적으로 원칙을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 실용을 강조하고 현실성을 내세우는 MB와 원칙을 내세우고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박씨는 애당초 화합과 화해가 어려웠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다.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정치'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두 사람은 결코 화해하고 화합할 사람들 같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기서 박근혜씨의 일격을 당하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세종시와 박근혜씨 문제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실효적 통치를 위해서도 수정안의 관철을 위해 건곤일척하는 수밖에 없다. 거기엔 정치적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박근혜씨는 엊그제 총리를 상대로 한 국회의 세종시 문제 대정부 질문에서 '반(反)MB'의 총수답게 행동하며 위세를 보였다. 그러나 박씨가 자신의 대선가도를 '반MB'노선의 축 위에 세우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러나는 대통령이라도 남을 못되게 하는 어깃장의 힘은 있는 법이다.
국민의 처지에서, 특히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보수-우파 진영의 관점에서 보면'친이'와 '친박'의 대결양상은 단순한 정책적 이견과 정치적 견제의 차원을 넘어서 범(汎)집권세력의 지리멸렬로 귀결될 수 있다. 세종시 문제로 섣불리 진검대결을 펼치는 저들 정치세력의 단세포적 조급성은 국정의 효율성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 대통령이 이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지금은 이 나라의 운전석에 앉은 이 대통령의 능력과 책임이 더 막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퇴임 후 자신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원한다면 보수-우파의 정권과 대통령이 뒤따라 줘야 한다. 그런 뜻에서도 쉽지는 않겠지만 박씨와 타협의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
박근혜씨도 더 숙고했으면 좋겠다. 그에게는 MB측을 이겨도 고민이고 져도 고민인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세종시 사태에서 충청인의 표심(票心)을 얻을는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어쩌면 '얻는 것보다 더 많은' 민심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반대'만 하는 지도자로 낙인 찍혀서는 곤란하다. 그런 안목을 가지고 정국을 봐야 한다.
만일 그러고서도 얻는 것이 없다면 그때는 두 사람이 서로의 길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 결말을 내야 한다. 그것은 국민과 보수-우파 진영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제는 'MB와 박근혜', '친이와 친박'의 싸움을 보는 국민도 민망하다 못해 지겨워졌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국민 앞에 나서더니 눈만 뜨면 사사건건 싸우는 이런 정치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