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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붙은 희토류 전쟁 중국이 웃고 있다

화이트보스 2009. 11. 25. 11:56

불 붙은 희토류 전쟁 중국이 웃고 있다

▲ 채굴한 희토류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1992년 1월 남순강화(南巡講話) 때 언급한 말이다. 희토류(稀土類)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당시 덩샤오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을까. 희토는 말 그대로 희귀한 흙으로, 정확한 명칭은 ‘희토류 원소 또는 금속(rare earth elements or metals)’이다. 원자 번호 57부터 71까지 란탄 계열 15개 원소에다 스칸듐, 이트륨을 합친 17개 원소를 통틀어 일컫는다. 화학적 성질이 비슷해 분리하기 어렵고, 천연적으로 서로 섞여 산출되는 양이 아주 적다. 희토류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고온 초전도체, 하이브리드 자동차, 풍력발전 터빈, 휴대폰, PDP, 항공기 부품, 광학렌즈, 컴퓨터 디스크, 특수자석, 석유화학 촉매제 등 21세기 첨단 산업에 두루 쓰이는 핵심 원료이기 때문이다.

‘21세기 경제무기’… 70%가 중국에 매장

실제로 사용되는 분야를 보면 유로퓸은 액정표시장치(LCD)에 들어가며, 에르븀은 광섬유 케이블에서 광신호를 증폭시키는 작용을 돕는다. 이트륨은 발광다이오드(LED) 제작에 사용되며, 란타늄은 하이브리드·전기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은 전기자동차에 장착되는 모터 생산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테르븀은 저에너지 전구에, 세륨은 디젤 엔진 촉매변환 장치에 각각 사용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하이브리드카인 도요타 프리우스의 경우 한 대에 0.9~1.8㎏의 네오디뮴이 들어간다. 희토류는 이런 용도 때문에 ‘첨단 산업의 비타민’ 또는 ‘녹색(green) 산업의 필수품’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희토류는 이런 점에서 볼 때 21세기 첨단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전략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토류는 또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광물에 속한다. 테르븀은 1㎏당 300달러, 디스프로슘은 110달러나 한다. 

문제는 희토류를 캐내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것이다. 희토류를 보유한 국가도 별로 없다. 그런데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전세계의 70%에 달하며, 공급량의 63%, 생산량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희토류 비축량, 생산규모, 수출량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연간 생산량은 18만t이다. 특히 세계에서 유통되는 희토류의 절반이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바오터우(包頭)에 있는 바얀오보 광산에서 나온다. 중국 남부의 소규모 광산들이 나머지를 생산한다. 희토류 중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은 99%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석유 부국인 중동국가들이 전세계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듯이, 중국도 21세기 첨단 산업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는 셈이다. 덩샤오핑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철강·전자·자동차 등 첨단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희토류에 대한 수출을 강력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은 최근 3년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중국이 내세우는 이유는 자국이 쓸 물량도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투자공사 채굴회사 설립, 본격 통제 나서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의명분이고, 의도는 일종의 ‘자원 무기화’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업신식화부는 지난 9월 ‘2009~2015년 희토공업발전계획’과 ‘희토산업발전정책’을 제정했다. 그 내용을 보면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2015년까지 희토류 수출량을 연간 3만5000t으로 규제하고 연간 생산량도 13만~17만t으로 제한키로 했다. 20%의 수출 관세도 부과한다. 외국인의 희토 채굴 관련 광산기업 설립은 금지된다. 하지만 외국인의 희토 가공, 신재료 개발, 희토 응용 관련 투자는 허용된다. 중국 정부는 또 희토류를 ‘21세기 경제무기’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도 부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희토류와 관련된 전국 100여개 업체를 20여개 업체로 통폐합해 규모를 키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네이멍구를 거대한 글로벌 희토류 생산단지로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특히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네이멍구자치구에 바오터우 철강그룹과 손잡고 대규모 희토류 채굴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CIC가 투자에 나선 것은 국제 시장에서 희토류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중국의 전략적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시사주간지 중국주간은 “중국이 희토류를 통제한다는 소식에 미국과 일본 등이 단단히 긴장하고 있다”면서 “희토류라는 희귀한 자원이 화약 연기 없는 국제전쟁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10월 21일자) 

중국, 희토류 미끼로 외국기업 유치

실제로 중국 정부의 사실상 자원 무기화에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다. 현재 전세계 희토류 수요는 연 12만4000t이며 2015년까지는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에 대한 쿼터제한, 관세부과 등의 방법으로 보호무역조치를 취해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했던 약속과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유럽연합 통상위원회는 지난 11월 4일 중국의 희토류 수출규제가 불공정 행위라며 WTO에 제소했다. USTR는 협의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WTO에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USTR는 또 중국의 수출 규제가 세계 시장에서 자원 가격을 올리고 있고 이로 인해 중국 기업들이 해외 경쟁 기업들에 비해 부당하게 유리한 지위를 선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서린 애시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도 “중국의 자원 수출 규제가 경쟁을 왜곡하고 세계 시장에서 자원 가격 인상을 초래해 유럽 기업들의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조치에 따라 희토류의 국제 거래 가격이 치솟고 있으며, 일부 외국 기업들은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우리의 조치는 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서 “희토류가 필요하면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면 될 것”이라면서 배짱을 부리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을 미끼로 외국 첨단기업들의 자국행을 유도하고, 자국 기업에 유리하게 희토류 수급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상품분석가 잭 리프톤은 “중국은 자국 내 수요 증가로 2015년께 희토류 수출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미, 폐광산 생산 재개 등 희토류 확보전

▲ 세계적인 희토류 매장지 중 하나인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 광산. 세륨 등 다섯 종류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다. / photo 로이터
미국과 일본 등은 희토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산과 기존 비축분에 의존했던 미국은 세륨·란타늄 등 다섯 종류의 희토류가 매장된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패스 광산을 다시 열어 생산 재개에 나섰다. 이 광산을 소유한 몰리코프사는 2012년까지 2만t의 광물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운틴 패스 광산은 중국의 바오터우 광산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희토류가 가장 많이 매장된 곳으로 2002년 환경 오염을 이유로 채광을 중단했었다. 그레이트 웨스턴 미네랄 그룹, 레어 엘리먼트 리소스, 아발론 레어 메탈스 등 미국과 캐나다 기업들도 희토류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은 현재 중국으로부터 필요한 희토류 중 76%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 지질연구소는 자국 경제가 자칫하면 희토류 부족이라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안보 차원에서도 중국이라는 잠재적 적국에 희토류를 의존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희토류는 미사일 등 최신예 무기 제작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의회는 미군이 중국의 희토류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검토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따로 배정하기도 했다.

▲ 1㎏당 가격이 110달러에 이르는 희토류 디스프로슘.
일본 정부도 디지털 가전 및 철강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국가 비축 대상 품목을 7개에서 15개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고 비축량을 늘리기로 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희토류를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키로 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희토류의 미개발 광산이 많은 아프리카와 남미 및 아시아 국가들의 철도, 도로 등 광산 주변 인프라 정비사업에 엔 차관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일본 기업의 진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엔 차관을 통해 희토류 보유국들과 관계를 강화, 일본 기업이 광산개발권 등 권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일본은 보츠와나, 잠비아 ,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남부 3개국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일본 스미토모 상사와 도시바는 지난 10월 카자흐스탄의 국영원자력공사와 희토류 공동개발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도요타자동차의 자회사인 도요타통상은 베트남에서 국영광물공사와 합작으로 광산회사를 설립, 희토류를 생산키로 했으며, 인도에서의 수입 판매권을 가진 상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일본은 또 호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희토류 전량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은 2015년까지 필요한 수요의 40% 정도인 1만5000t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시바는 희토류가 에너지절약 제품에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매년 수요가 늘고 있어 희토류의 안정적인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호주, 그린란드서 5만t 광산 발견

▲ 미사일 재료에 사용되는 희토류 바나뮴.
희토류 값이 급등하자 호주, 남아공, 캐나다 등에선 희토류 광산을 찾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호주 광산업체 2곳은 자체 생산량을 5만t으로 늘릴 계획이다. 남아공에선 1963년 폐쇄된 광산을 다시 여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남아공의 폐쇄된 광산은 2년 정도 시간만 들이면 생산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가운 소식도 있다. 호주 광산업체가 덴마크령 그린란드에서 지난 9월 매년 5만t 생산이 가능한 희토류 매장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더 타임스 10월 5일자 보도) 현재 정확한 매장량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전세계 희토류 매장량의 25%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린란드에선 지구온난화로 영구 동토가 녹으면서 우라늄을 비롯해 다양한 광물이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희토류 채굴이 본궤도에 오르는 데 10년가량 걸린다는 점이다. 호주, 캐나다, 그린란드 등이 광산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중국의 독주는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은 또 자국의 희토류 광산 개발에 보다 많이 투자를 할 것이 분명한 만큼 국제시장에서 지배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독 등도 ‘도시광산’ 개발에 박차

이 때문에 미국, 독일, 일본 등은 궁여지책으로 폐기된 전자제품 등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른바 ‘도시광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시광산은 공장에서 배출되는 산업 폐기물과 버려진 폐휴대폰, 폐자동차 등에서 희토류와 구리, 아연 등 금속광물을 추출하는 작업이다. 도시광산은 채취의 효율성이 매우 높다. 금은 원석 1t에서 4g이 나오는 반면 휴대전화 1t에는 280g의 금이 포함돼 있다. 일본 물질재료연구소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도시 광산의 금 매장량은 6800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세계 금 매장량의 16%에 해당하는 규모다. 희토류가 어느 정도 추출될 수 있을 것인지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상당량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부족한 자원 확보를 위해 전세계를 동분서주하면서 총력을 기울여왔던 중국으로선 희토류를 풍부하게 보유함으로써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더 타임스는 “중국이 세계 기술의 미래를 책임질 열쇠를 갖게 됐다”면서 “각국이 첨단산업과 친환경 녹색 산업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수록 희토류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희토류를 둘러싼 글로벌 자원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