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CA, 이주여성 109명 직업훈련
미용사·네일아트사 등으로 재탄생
"어머니, 그래도 고운 분홍색이 좋지 않으세요?"25일 오전 서울 송파2동 대한노인회 송파지회의 '실버미용실'. 꼼꼼히 칠한 마스카라에 선홍색 입술까지 화려하게 화장을 한 이다은(30·인도네시아·본명 에띠수하에띠)씨가 이정숙(51)씨의 손을 마사지하며 물었다.
야무지게 매니큐어를 붙잡고 부드럽게 손톱을 메워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정숙씨는 말끔하게 정리된 손톱을 흡족하게 내려다보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일어섰다.
- ▲ 이다은씨(사진 오른쪽)가 25일 대한노인회 서울 송파지회에서 손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이씨는 서울YWCA 부설 가락종합사회복지관에서 배운 네일아트 기술을 활용해 일하고 있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같은 시각, 울산에 사는 놋(22·캄보디아)씨는 울산YWCA 1층의 '레인보우 커피전문점'에서 카페모카를 만들었고, 경남 진주YWCA의 레민(23·베트남)씨는 남성 정장 바지의 길이를 줄였고, 전남 순천의 미용실에서 일하는 뉴엔티기우짱(25·베트남)씨는 손님의 머리를 굵은 롯드로 말았다.
이들은 한국 YWCA연합회에서 마련한 직업훈련을 통해 각각 전문 바리스타·미용사·네일아트사·의류수선사 등으로 재탄생한 결혼이주여성들이다.
YWCA는 지난해 바리스타·네일아트사·영어강사·포크아트사·천연화장품제조사·생활정착지원 상담원·한국어 강사 등 결혼이주여성 적합 직종을 개발했다. 전국 10개 YWCA지부에서 109명의 결혼이주여성을 모집해 지난 5월부터 롯데홈쇼핑의 후원으로 4개월간 실무교육을 실시했고, 원하는 참가자에겐 일자리까지 연결해줬다. 4대보험에 월 66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올해 12월까지 일하게 된다.
이들은 "한국 땅에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란 것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바리스타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를 보며 바리스타의 꿈을 키웠다는 놋씨는 "처음에는 친구도 없이 혼자 지내다 보니 너무 갑갑해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해요. 이곳에서 내 삶을 찾은 것 같아요. 친구들도 많아졌고 돈도 벌어요. 아이(2) 옷도 제가 벌어 사줄 수 있고요." 놋은 남편(50)이 퇴직하면 함께 커피전문점을 여는 것이 소원이다.
레민씨도 "수선일을 시작하고부터 나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는 남편(35)은 처음 레민씨가 일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그냥 집에서 아이 보고 살림만 해라'고 반대를 했지만, 점점 밝아지고 활력을 찾는 아내를 보면서 이제는 '지지' 입장으로 돌아섰다.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다은씨네 시어머니는 "젊었을 때 뭐든지 배우라"며 "미용사 자격증을 따면 미용실을 차려주겠다"고까지 했다.
YWCA 사회개발위원회 최정은 팀장은 "이제 시작단계이지만 많은 가능성을 보고 있다"며 "결혼이주여성도 각자 '인생계획'을 세울 수 있고, 이 인력을 원하는 틈새시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미용사를 육성한 순천YWCA의 사회적일자리 담당자 이은원씨는 "총 11명의 일자리를 구해야 했는데, 오히려 미용실 20여곳에서 결혼이주여성을 채용하고 싶다고 해 '골라 가는' 상황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