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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씨는 間諜(간첩)인가 아닌가

화이트보스 2014. 3. 12. 13:30

그런데 유씨는 間諜(간첩)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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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3.12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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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거 조작 의혹과는 별개로 유씨 간첩 혐의 진실 밝혀야
    처음부터 억울한 누명이었다면 국정원 해체 수준 개혁 불가피
    北 공작원 맞는데 그냥 넘어가면 북한 보위부만 웃으며 조롱할 것

    박두식 논설위원
    박두식 논설위원
    "제발 좀 저를 평범한 한국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줬으면 좋겠어요."

    간첩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유우성(34)씨가 열흘 전쯤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금껏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화교(華僑) 출신인 그는 북한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환자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북의 현실에 실망해 중국을 거쳐 2004년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서울에서 다시 대학을 다녔고 2011년에는 서울시청 계약직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여기까지는 탈북 청년의 성공 스토리다.

    그는 2013년 1월 간첩 혐의로 국가정보원에 체포됐다. 두 달여 전 유씨처럼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그의 여동생이 유씨가 북한 간첩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탈북자들이 입국하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정부 합동 신문 조사에서 이런 증언을 했다. '유우성 간첩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동생은 "고문 등 강압에 의해 거짓 진술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국정원이 유씨의 북한 체류 증거라며 제출한 사진은 촬영 장소가 북한이 아닌 중국으로 밝혀졌다. 핵심 증언과 증거가 뒤집어진 만큼 무죄판결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2심 재판도 유씨에게 불리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정원이 법원에 추가로 제출한 2006년 5~6월 유씨가 중국과 북한을 오간 기록이 위조(僞造) 논란에 휘말렸다. 이 문서들을 국정원에 건넨 또 다른 탈북자 김모씨는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살을 시도했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에 준 자료는 위조됐고 국정원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증거 조작 의혹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관련자 증언과 정황 등을 보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 증거 조작 의혹과는 별개로 유씨의 간첩 혐의 역시 분명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평범한 한국 국민으로 살고 싶다'는 유씨의 소망이 이뤄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유씨가 받고 있는 간첩 혐의는 먼저 국정원이 처음부터 사람을 잘못 짚었거나 도중에 잘못인 줄 알았는데도 계속 북한 공작원으로 몰아간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와 대공 수사 분야의 국정원 직원 몇몇 사람에게 형사상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국가 안보의 최전방에 배치된 국정원이 총구(銃口)를 우리 국민에게 겨눈 것이나 다름없는 이 사건을 적당히 넘긴다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사실상 새 정보기관을 만든다는 각오로 국정원 개혁에 나서야 한다.

    두 번째는 유씨가 북한과 일정한 연계를 갖고 활동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국정원과 검찰이 법적으로 입증하지 못한 경우다. 자살을 시도한 김씨는 유서에서 '유씨는 간첩이 분명하다. 증거가 없으니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추방하라'고 썼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래서 가볍게 흘려보내기 쉽지 않다. 상당수 국민이 국정원 증거 조작 의혹에 분노하면서도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목엣가시처럼 불편한 느낌을 털어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유씨가 간첩인데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가장 기뻐할 집단은 북한 보위부다. 그들은 지금도 박수를 치면서 우리를 조롱하고 있을 것이다. 국정원을 무력화시키고 한국 사회를 교란한 정도만 놓고 본다면 유씨 사건은 북이 지금껏 시도한 그 어떤 공작보다도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번 사건이 이대로 마무리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유씨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재판에서 유씨의 무죄가 확정된다 해도 국정원이 무능해서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믿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같다. 국정원은 여전히 유씨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5차례에 걸쳐 밀입북한 북한 공작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씨를 위해서라도 북한 체제에 좌절한 끝에 사선(死線)을 넘어 자유를 찾아왔다는 그의 주장의 진위(眞僞)를 가려내야 한다.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인 국정원의 증거 조작 의혹은 유씨 사건의 한 부분이다. 이것과 함께 국정원이 유씨를 북 공작원으로 처음 인지하게 된 경위부터 이후 수사 과정, 여동생이 주장하는 가혹 행위가 정말 있었는지까지 다 밝혀져야 한다. 이번에 노출된 휴민트(인적 정보)를 비롯한 정보 자산(資産)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제3의 독립기관에 맡겨서라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실패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이 나라 정보기관을 믿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