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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 발행 5년

화이트보스 2014. 6. 21. 08:07

5만원권 발행 5년

기사입력 2014-06-21 03:00:00 기사수정 2014-06-21 04:14:08

사임당, 8억8953만명

경북 경산시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 활판 인쇄기로 5만 원권의 왼쪽 상단 및 오른쪽 하단에 일련번호를 매기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경산=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5만 원권 좋지. 색깔 예쁘고 크기도 적당하고.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에게 다짜고짜 “5만 원권 어떠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갖고 다니기 간편하고 큰돈 거래하기도 편리하고…. 이 근방 사람들은 다들 5만 원권 써요.”

반면 길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는 미간을 찡그렸다. “거슬러 주기 아주 불편해. 두세 명만 5만 원짜리 들이밀면 잔돈이 부족해 여간 곤란한 게 아냐. 돈 숨기려는 부자들이나 편하겠지.”

2009년 6월 23일 신사임당의 인자한 미소가 그려진 노란색 5만 원권이 처음 등장했다. 발행 첫날 한국은행 본점 앞에서 아이돌 가수의 등장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수백 명이 밤을 새우며 따끈따끈한 신권이 나오길 기다렸다. 1973년 선보인 1만 원권을 밀어내고 36년 만에 등장한 최고액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그만큼 뜨거웠다.

5만 원권이 발행된 지 만 5년. 한은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5년간 시중에 뿌려진 5만 원권 총액은 44조4767억 원(8억8953만여 장)이다. 화폐 발행 잔액을 기준으로 20세 이상 대한민국 성인 1명당 평균 22장씩 갖고 있는 셈이다. 발행 당시 5만 원권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지하경제를 키울 것이라는 논란이 컸다. 화폐에 새겨질 초상화 등장인물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디자인 문제도 제기됐다.

5만 원권 발행 5년을 맞아 동아일보 취재팀이 5만 원권 발행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 가로 15.4cm, 세로 6.8cm의 손바닥만 한 지폐에 아로새겨진 희망과 한숨, 욕망과 환희, 웃음과 눈물을 들여다본다.

이상훈 january@donga.com 경제부 페이스북·김범석·유재동 기자  


▼ 성인 1명당 22장꼴로 풀렸다는데, 내 지갑엔… ▼

5만원권 만드는 데 45일 걸려… 순면 전지 하나에 28장, 140만원

50만장씩 덩어리로 묶어 한은行… 경조사비 법칙 ‘3-5-10만원’서
2009년 이후 ‘5-10만원’으로 … 직장인 축의금 77%가 5만원권

서울 중구 KB국민은행 오장동지점에서 몽골인 직원이 5만 원권 다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전국 국민은행 점포 중 5만 원권 유통이 세 번째로 많은 이 지점은 몽골인 등 현금을 선호하는 외국인이 많이 찾아 현지어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경북 경산시 화랑로 140-10. 경산조폐창이라 불리는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가 이곳에 있다. 2009년 이후 시중에 유통된 9억여 장의 5만 원권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사람으로 친다면 ‘돈 공장’인 경산조폐창은 5만 원권의 고향이다.

19일 오전 동아일보 취재팀이 경산조폐창을 방문했을 때 보안요원들은 눈빛을 번득이며 낯선 이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깐깐한 신분 확인 절차를 마치고 허락받은 범위 안에서 취재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나서야 조폐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행한 보안요원이 복잡한 비밀번호를 누르고 지문을 갖다 대자 육중한 공장의 철문이 비로소 열렸다. 은행에서 신권을 찾을 때 나는 특유의 알싸한 ‘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돈으로 보이면 어떻게 일하겠어요”


5만 원권 한 장이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일. 100% 순면인 지폐용지에 홀로그램을 붙이고 도안을 새긴 뒤 각종 위·변조 방지 작업을 거치면 가로 4장, 세로 7장씩 총 28장의 5만 원권이 들어 있는 대형 전지(全紙)가 만들어진다. 전지 한 장에 찍힌 액면가만 140만 원이다.

조폐공사에서 돈은 ‘공산품’이다. 생산이 끝나면 포장을 거쳐 한국은행에 납품된다. 전지에 찍힌 28장의 5만 원권을 규격대로 자르고 띠지를 둘러 비닐포장까지 마무리하면 비로소 한은에 들어갈 5만 원권이 완성된다. 포장을 기다리는 5만 원권이 가득 쌓인 공간은 장관이다. 그야말로 돈다발 천지다. 공장에 쌓인 돈만 어림잡아 수천억 원에 이른다.

5만 원권 100장을 묶은 다발을 이곳에서는 ‘속’이라는 단위로 센다. 10속을 묶으면 5000만 원어치 1포가 만들어지고, 이를 다시 10포씩 묶어 5억 원짜리 1팩을 만든다. 조폐공사는 50팩을 묶은 250억 원어치 더미를 기준으로 한은에 납품한다.

생산 과정에서 돈다발을 집어가거나 숨기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공장 내 작업자들은 매일 출퇴근할 때 보안검사를 받는다. 구석구석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작업자들을 면밀히 감시한다. 첨단기기로 공정이 자동화돼 일련번호 순서대로 정렬되지 않은 지폐가 검수기에 들어가면 생산이 중단된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데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없을까. 이곳에서 매일 수억 원의 돈을 만지며 29년째 일해 온 이모 씨(49)는 이런 질문에 생뚱맞다는 듯 쳐다봤다. 5만 원권 다발을 정리하던 날렵한 손놀림을 잠시 멈추고 답했다. “우리한테 5만 원권은 제품이지 돈이 아니에요.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는 제품을 매일 만지다 보니 다들 손이 거칠어요. 냄새가 고약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고…. 돈으로 보이면 어떻게 여기서 일하겠어요.”

사실 5만 원권 발행은 조폐공사의 수익을 크게 악화시켰다. 1만 원권이라면 5장 찍을 것을 5만 원권 1장만 찍다 보니 생산되는 지폐의 장수가 줄어든 것이다. 시중은행이 발주해 조폐공사가 생산하는 자기앞수표마저 5만 원권 출시 이후 발행량이 격감했다.

김화동 조폐공사 사장은 “5만 원권 발행 전과 비교해 제품 생산량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며 “그 대신 상품권, 신분증카드 등 다양한 상품 제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에 상품권 제작을 맡기던 국내 유명 백화점들은 이제 조폐공사에서 상품권을 찍는다. 5만 원권 제조에 적용한 첨단 위·변조 방지 기술이 상품권 생산을 수주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이래저래 5만 원권은 조폐공사를 울리고 달래는 제품이다.


“사장님들은 카드보다 5만 원권 좋아해”

경산조폐창에서 태어난 5만 원권은 일련번호와 한은 총재의 직인을 받고 한은 금고에서 시장에 풀릴 준비를 한다. 사람으로 치면 출생신고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 셈이다.

“○○○ 고객님. 5만 원권 100장, 500만 원 출금됐습니다.”

서울 중구 동호로 KB국민은행 오장동지점. 소매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낡은 셔츠를 입은 한 남성이 가방에 현금뭉치를 챙겨 넣었다. 은행원의 친절한 미소 앞에서도 무뚝뚝한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은행 청원경찰은 “이 근처 고객들은 다들 저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장동은 소규모 인쇄공장과 목재상 등이 밀집한 지역이다. 소박하다기보다 허름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상업지구다. 이곳 고객을 상대하는 국민은행 오장동지점은 이 은행 전국 1188개 점포 중 5만 원권이 세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곳이다. ‘큰손’들이 활약하는 서울의 번화가인 명동 광화문 강남 등의 점포보다 5만 원권 유통량이 훨씬 많다. 김용수 오장동지점장은 “중소기업 사장, 재래시장 상인 고객들은 현금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른 점포보다 5만 원권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꼽는 5만 원권의 가장 큰 고객은 단연 중소기업. 규모가 영세할수록 현금을 더 선호한다. 대기업보다 신용도가 낮고 거래액도 비교적 적기 때문에 어음, 외상매출채권을 활용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 인근의 30m² 안팎의 소규모 공장들은 아직도 직원들에게 상여금이나 식대(食代) 등 급여 일부를 현금으로 준다. 1000만∼2000만 원 안팎의 5만 원권 현금을 쌓아 뒀다가 설, 추석 등 명절을 전후해 수천만∼수억 원을 푼다.

재래시장 상인도 5만 원권의 단골손님이다. 아직도 현금을 내는 고객에게 물건값을 깎아주고 도매상이나 산지에서 물건을 받아 올 때 현금을 지급하는 상인이 적지 않다. 고객들이 5만 원권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지역 은행 점포들은 5만 원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본점에서 5만 원권을 얼마나 받아 오느냐에 따라 지점의 실적이 좌우될 정도라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얘기다.

은행 고객들도 평소에 거래를 자주 하고 신용을 쌓아야 필요할 때 5만 원권을 넉넉히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데 각별히 신경을 쓴다. 다른 은행의 한 지점장은 “별다른 이유 없이 고액 현금거래가 발생하면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며 “평소 신용이 좋은 고객, 사용처가 믿을 만한 고객에게 5만 원권을 우선 내 준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5만 원권을 자주 찾는다. 오장동지점이 자리한 동대문시장 인근에는 국내에 체류하는 몽골인들이 모여 사는 ‘몽골타운’이 있다. 이들을 비롯해 동대문시장에서 대량으로 의류 등을 사는 이른바 ‘보따리장수’들도 현금을 선호한다. 김 지점장은 “외국인은 수표나 신용카드 등을 쓰는 게 불편해 부피가 작은 5만 원권을 주로 찾는다”고 귀띔했다. 몽골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네팔 등에서 온 보따리장수들이 자국에서 송금 받은 돈을 5만 원권으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명동, 남대문시장 등에서 외국인을 상대하는 외화 환전상들도 5만 원권을 찾는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 100달러, 100유로 등의 큰돈을 찾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편리함 때문에 주로 5만 원권으로 환전한다.


경조사비의 법칙, ‘5-10’으로

5만 원권 유통을 앞두고 “고액권이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실제로는 미풍에 그쳤다. 2009년 이후 5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2.7%로 2004∼2008년 연평균 상승률(3.2%)보다 낮았다. 2011년에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까지 높아졌지만 이는 유가(油價), 곡물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저효과에 따른 경기호전 효과가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경조사비에서는 눈에 띄는 영향이 나타났다. 5만 원권이 나오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조사비 씀씀이가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경조사비는 5만957원(2012년 말 기준)이다.

2008년 4만4103원이던 평균 경조사비는 5만 원권이 선보인 2009년 4만9653원으로 12.6% 상승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5만2131원으로 집계돼 경조사비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5만 원’을 돌파했다. 2006∼2008년 경조사비 상승률이 4.3%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5만 원권 발행 이후 경조사비 지출이 급격히 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 12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결혼식 축의금으로 5만 원을 낸다고 밝혔다. 3만 원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에 그쳤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달 결혼한 대기업 직장인 박모 씨(32)의 축의금 장부를 분석했더니 총 888만 원의 축의금 중 77.1%인 685만 원은 5만 원권이었다. 3만 원을 낸 사람은 9명, 7만 원을 낸 사람은 2명이었다. 친분의 정도에 따라 과거에 ‘3만-5만-10만 원’ 단계로 나뉘었던 축의금의 심리적 단위가 최근에는 ‘5만-10만 원’으로 달라지면서 ‘경조사비 인플레’가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직장인 김모 씨(43)는 “세뱃돈도 예전에는 1만 원씩 줬지만 요즘에는 5만 원은 줘야 체면치레가 된다”고 말했다.

5만 원권이 처음 등장할 때 “도박장 배만 불리는 일”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5년이 지난 지금 이런 우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 입점한 NH농협은행 마사회지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는 5만 원권을 인출하거나 입금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마권을 지나치게 많이 사지 않도록 한국마사회 측이 농협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농협 측은 “마사회지점에서 매주 나가는 현금이 15억 원 안팎인데 5만 원권 비중은 절반이 채 안 된다. 다른 지점보다 현금 거래가 많긴 해도 차이가 아주 크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는 사정이 다르다. 이곳에 입점한 신한은행 사북지점은 5만 원권 입출금을 특별히 막지 않는다. 매주 거래량은 50억 원 안팎. 서울시내 점포 한 곳의 5만 원권 거래액이 5억∼10억 원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매우 큰 규모다. 신한은행 전국 지점 중 5만 원권 거래액 1위인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 백범은 5년째 대기중 ▼

10만원권 지폐 발행 갑론을박


앞면은 백범 김구 선생, 뒷면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대동여지도. 신사임당의 5만 원권과 함께 발행이 추진되다가 2009년 초 중단된 10만 원권의 도안이다.

5만 원권이 발행 5년 만에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 잔액의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화폐 거래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10만 원권 발행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5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화폐 단위를 한국 경제 규모와 위상에 걸맞도록 바꿔야 한다는 리디노미네이션 요구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10만 원권도 발행해야”

한때 직장인의 비상금 수단으로 애용되던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는 5만 원권 발행 이후 위상이 추락했다. 10만 원권 수표의 하루 평균 결제건수는 5만 원권 발행 전인 2008년 374만2000건에서 지난해 112만9000건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서를 해야 하는 불편이 없는 데다 자기앞수표에 붙는 발행수수료 등을 아낄 수 있어 소비자들이 수표 대신 5만 원 지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거래 과정을 노출하기 싫은 고액 자산가들도 꼬리표가 붙지 않는 5만 원권을 애용한다. 사회적으로는 제조비가 지폐의 50배나 되는 수표 사용이 줄면서 연간 수천억 원의 수표 발행·유통 비용도 절감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예 10만 원권을 발행해 국민의 경제활동 편의성을 높이고 화폐 발행 비용을 더 줄이자는 주장이 나온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 규모와 1인당 소득 수준, 지급결제 관행 등을 감안할 때 최고액권을 10만 원권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1973년 발행된 1만 원권이 36년간 최고액권 자리를 지키다가 5만 원권에 자리를 내준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최고액권인 100달러짜리(약 10만 원)가 100년 전인 1914년 발행됐다. 일본도 1만 엔권(약 10만 원)을 1958년 선보였고, 2002년 출범한 유로화는 최고액권이 500유로(약 70만 원)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5만 원권이 지하경제의 ‘검은돈’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마당에 10만 원권까지 발행하면 세금 탈루, 뇌물 수수 같은 불법 자금거래가 더 늘 수 있다고 주장한다.


리디노미네이션 효과 엇갈려

10만 원권 발행과 더불어 논란이 계속되는 이슈는 화폐 액면 단위를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이다. 1962년 10환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한 뒤 최고액권은 500원에서 5만 원으로 100배로 커졌고 국민소득은 2000배 이상으로 늘었지만 화폐 단위는 제자리다.

이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이 반복돼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한국은행이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했지만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수단으로 화폐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리디노미네이션이 공론화되기도 했다.

찬성론자들은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맞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미 달러 환율이 1000 대 1이나 되고 1에 영(0)이 16개나 붙는 경(京) 단위를 쓰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다.

화폐개혁이 이뤄지면 장롱 속 현금을 끄집어내 지금 같은 경기 침체기에 경기부양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 교체 비용부터 전산시스템 교체 등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에 가격에 대한 혼란 등 계산이 불가능한 부분까지 더하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반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3월 인사청문회에서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다”며 “지금 상황에서 상당한 논란과 비용이 불가피한 화폐 단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경제부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