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길 vs 홍준표의 길
박성원 논설위원
입력 2014-11-14 03:00:00 수정 2014-11-14 03:00:00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민주당의 대표 공약인 전면 무상급식을 비판하며 ‘단계별 무상급식’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개표 기준(33.3%)에 미달해 사퇴하면서 이같이 토로했다. 그 수혜자는 10·26 보궐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내걸고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박 시장은 10일 “무상급식은 우리가 판단해서 잘하고 있고 안착돼 있다. 그런데 저희와 한마디 상의 없이 (중앙정부에서) 무상보육, 기초연금 같은 게 떨어지니 (감당하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박 시장은 지금도 “시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한 결재가 무상급식이었다. 너무 행복한 결정이었다”고 할 만큼 무상급식의 수호천사를 자임하고 있다.
반면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남도교육청이 지난 4년 동안 무상급식비 보조금 3040억 원의 막대한 세금을 (도와 시군에서) 지원받고도 감사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감사 없는 예산은 없다는 원칙에 따라 더이상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했다. 무상급식을 향한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그 대신 서민 또는 차상위 계층 자녀들에 대한 교육보조금 형식으로 직접 도에서 (급식비를)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 중단이 배고픈 아이들을 굶긴다는 건 진보좌파의 사기”라고 했다. 차상위 계층까지 별도로 급식 지원이 이뤄지는데도 부자건 가난하건 가리지 않고 세금으로 공짜 밥을 먹이는 건 무차별한 세금급식이라는 논리다. 전국의 진보좌파가 총력 반발한 ‘진주의료원 폐업’을 밀어붙이며 “강성 귀족노조의 놀이터에 혈세를 퍼부을 수 없다”고 일갈했던 그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려는 듯하다.
홍 지사는 박 시장을 서울시장으로 등장시킨 2011년 보선 패배의 여파로 한나라당 대표직을 사퇴한 악연이 있다. 지금은 차기 주자 반열에 낄 듯 말 듯한 변방 도백(道伯)과 이미 차기 주자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는 수도 서울의 수장이 무상급식을 놓고 대척점에서 한판 대결을 시작한 형국이다.
어제 나온 한 일간지 여론조사 결과 모든 학생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는 무상급식에 대해 반대(52%)가 찬성(48%)보다 많았다. 3년 전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했던 오 시장이 쓸쓸히 패퇴하던 때와는 달라진 기류가 엿보인다. 무상급식에서 무상보육으로, 반값등록금으로 확산일로를 걷던 무상복지가 재정 부족이라는 한계에 부닥친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박 시장과 홍 지사는 같은 경남 창녕 출신이다. 한 사람은 스타 검사로 활약하다 정치권에 입문했고, 한 사람은 시민사회 운동을 하다 시장이 됐다. 한정된 재원으로 사회적 부조의 손길이 절실한 계층에 우선 혜택이 가게 하는 선별복지와 세금을 더 걷더라도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가리지 말고 복지 혜택을 주자는 보편적(또는 무차별) 복지 사이의 논쟁은 이제 본격화하고 있다. 쉽사리 끝나지 않을 긴 싸움에서 국민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진퇴도 엇갈리게 될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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