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1.27 03:17
황교안의 단식, 보수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 재성찰에 이르러야
'큰 국민' '도덕성' 등 대의와 명분 세우면 국민 마음 움직일 것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 지도 일주일이 흘렀다. 체력 소모가 큰 겨울철 단식에 건강이 위태롭다는 얘기도 들린다. 천막에 누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 보수 정치가 처한 위기를 가감 없이 표상한다.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보수 정치가 복원되어야 할 당위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국민 다수가 중도 및 보수적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지리멸렬한 보수 정치 세력 탓에 헤아릴 수 없는 인사 참사와 정책 실패에도 집권 진보 세력이 일방적으로 질주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안보, 외교, 경제, 교육, 민생 모든 영역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상황을 불안해하면서도,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 없이 집안싸움에만 골몰하는 보수 야당을 선뜻 지지할 수도 없는 게 국민 마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몰지각한 인사의 조롱과 무관하게, 대다수 국민은 황 대표의 고통스러운 단식을 걱정하면서 거기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 "고통은 고마운 동반자다. 육신의 고통을 통해 나라의 고통을 떠올린다. 저와 저희 당의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 그의 단식 정치가 지리멸렬하고 구태의연한 작은 정치로 귀결되는가, 아니면 의미심장한 큰 정치로 승화되는가는 이 깨달음이 무엇인가에 좌우될 것이다.
필자는 그 깨달음이 미시적 당리당략의 도모를 넘어 보수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 재성찰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황 대표의 단식이 무능하고 부패한 보수 정치 세력의 과오를 대속(代贖)하고 그 토대를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때 그의 단식 정치는 진정한 빛을 발할 것이다. 그래야만 황교안 대표가 고통스러운 단식을 끝내고 일어날 때, 빈사 상태의 보수 정치도 함께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올가을, 정치 평론가로도 활동하는 홍성걸 교수에게 '한국 보수주의, 미래는 있다'란 제목의 책을 한 권 받았다. 그 내용 중 눈길을 끌었던 것은 보수 정치 세력이 추구해야 할 기본 방향과 가치를 정리한 대목이다. "큰 국민과 작은 국가, 힘찬 성장과 공정한 분배, 튼튼한 안보와 당당한 평화, 따뜻한 공동체와 준비된 미래." "자유, 민주, 공정, 포용,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중심 가치로서의 도덕성."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소중한 사회적 가치들, 우리가 보수의 이름으로 지키고자 하는 기본 덕목들이 거기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보수주의는 "큰 국민"을 바라보는 통합과 포용의 정치다. 보수주의는 국민의 분열에 편승해 자신의 지지층에 호응하면서 나머지 집단을 배제하는 파당 정치,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앞서 권력 장악에 몰두하는 진영의 정치를 지양한다. 극단적 표현과 혐오스러운 막말이 난무하는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배격한다. 그게 큰 국민을 지향하는 보수 정치의 본모습이다.
"도덕성"은 또 어떤가. 엄격한 규범의 정립과 실천으로 권력 남·오용의 뿌리를 뽑고, 공정한 기회와 정당한 노력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특권을 내려놓는 게 보수 정치 본연의 모습이다. 시민의 이익을 대표하기보다 그들 스스로의 이익을 실현하는 특권 계급화된 정당을 앞장서 끝내는 게 보수 정치의 이념이다.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현실의 보수 정치 세력에 이런 보수의 기본 가치들은 완전히 망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보수 정치 구성원들에게 명확하게 인식되고 공유되지도, 대외적으로 일관성 있게 제시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 빈자리를 심지어 수구적 권위주의와 개발독재시대에 대한 향수가 채웠다. 한국의 보수 정치는 바로 이 대목에서 죽었다. 보수 정치가 되살아나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일 것이다.
자유한국당 총선기획단은 내년 총선에 대비해 현역 의원의 절반 이상을 물갈이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계적 개혁 방안들에 감동할 국민은 많지 않다. 그 대신 국민은 묻는다. 자유한국당은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는가.
보수 정치 세력은 정치의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