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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이 주무르는 513조 예산

화이트보스 2019. 11. 30. 08:14



3명이 주무르는 513조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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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11.30 03:14

김경필 정치부 기자
김경필 정치부 기자

지난 9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513조5000억원짜리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을 때 여야는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혈전(血戰)을 예고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들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그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재정 운용"이라며 "반드시 삭감하겠다"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소중한 마중물"이라며 "무분별한 삭감 시도를 꼭 막아내겠다"고 했다. 여야가 '육탄전'을 불사하는 충돌을 경고한 것이다. 특히 야당은 예산을 14조원가량 삭감해 500조원 이하로 내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예산안 심사는 아주 평화롭게 진행됐다. 사실은 이들끼리 싸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 17개 상임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원안에 이런저런 사업 예산을 붙여가면서 전체 규모를 10조원 이상 부풀렸다. 당연히 개별 의원들은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예결위 소위원회에서 열흘간 진행된 감액(減額) 심사에서도 여야 의원들은 다투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이 삭감 의견을 600건 이상 내기는 했지만, 여야 간에 조금이라도 이견이 있는 안건은 모두 삭감 결정 없이 '보류' 처리했다. 소위에서 삭감이 확정된 금액은 약 4200억원, 정부 원안 대비 0.08%에 불과했다.

나머지 수십조원어치는 여야의 협상 테이블로 직행했다. 예결위의 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간사 3명이 어느 법에도 근거가 없는 '예결위 간사 협의체'라는 조직을 만들어 비공개로 예산안 심사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514조원의 예산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장막에 가려졌다. 과거 초법적 밀실 심사로 악명 높았던 '예결위 소(小)소위원회'를 간판만 바꿔 달고 다시 가동한 것이다. 회의록을 남기지 않으므로 누가 어떤 청탁을 받아 '쪽지 예산' '카톡 예산'을 끼워넣었는지 알 길이 없다. 크게는 수조원짜리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 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어떤 기록도 남지 않는다.

여야는 '밀실 심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를 개선하려는 시늉을 하기는 했다. 예결위 여야 간사들은 이 '협의체'에 대한 속기록을 남기고, 매일 회의를 시작하기 전 전날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언론에 브리핑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채 하루도 가지 않았다. 여야 간사들은 28일 바로 말을 바꿔서 예 전처럼 아무 기록도 남기지 말기로 했다. 짬짜미로 나눠 먹기 위해 자기가 발표한 원칙마저 뒤집은 것이다. 내년도 예산 513조5000억원을 우리나라 인구로 나누면 약 990만원에 달한다. 전 국민에게서 매년 1000만원씩 걷어가 돈을 쓰는데, 어디에 얼마나 쓸지를 단 3명이 밀실에서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국회의 전횡(專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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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9/20191129033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