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1.29 17:56
‘정치 공작 본거지의 정황이 더 확연해진 조국 민정 수석실.’ 한 신문의 톱 사설 제목이다.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울산시장 하명 수사 사건, 둘 모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주도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 밑에는 4명의 비서관이 있다. 민정비서관, 반부패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이다. 이중 조국 민정수석, 백원우 민정비서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 세 사람은 민정수석실 원년 멤버들이다.
이제 우리는 조국·백원우·박형철, 이 세 사람을 각각 떼어놓고 봐야하는 시점에 왔다. 이제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조국 전 수석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박형철 비서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주변에서 (유재수 전 부산 부시장 감찰을 무마해달라는)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고 한 뒤 감찰 중단을 지시했다." 박형철 비서관은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조국 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 시장 첩보 사건에 대해서도 그렇다. 백원우 전 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통상) 많은 내용의 첩보가 외부로 이첩된다. 울산 사건 만을 특정해 전달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박형철 비서관은 다음과 같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진술을 했다. "백원우 전 비서관이 김기현 전 시장 관련 첩보만 따로 보고서 형태로 건넸다." 박형철 비서관은 민정수석실 핵심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진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박형철 비서관은 민정수석실 핵심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증언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청와대 분위기를 견딜 수 있겠는가. 당연히 사의를 표명했으며,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형철 비서관은 검사 출신으로 2013년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국정원 댓글 수사팀에서 팀장·부팀장으로 함께 일했던 사이다. 그 뒤 두 사람은 동시에 좌천되기도 했다. 박형철 비서관은 윤석열 총장을 "석열이 형"이라고 부른다. 박형철 비서관은 사태의 흐름을 파악하고, 청와대라는 난파선에서 뛰어내려 ‘윤석열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드루킹 사건, 버닝썬 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등, 문재인 정권을 밑기둥부터 흔들 수 있는 굵직한 4가지 의혹에 모두 등장하고 있다. 이 사람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을 했고, 17대·18대 재선 국회의원 출신인데다, 문재인 청와대에서는 수석 자리가 아닌 비서관으로 들어가 "급이 다른 왕비서관" 소리를 들었다.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에서 첫 첩보를 만든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에 검찰 수사도 백원우 전 비서관에게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유재수 전 부시장,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사람’으로 일했고, 그때 문재인 민정수석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다음, 문재인 정권 들어와 여권의 핵심 실세로 지내왔다는 점이다. 그만큼 문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터질 때 그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유재수 감찰’을 시작하고 ‘울산시장 첩보’를 내려 보내던 2017년 가을·겨울, 그때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 구속,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 구속 등 전임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의 광풍이 불던 때였다. 문화일보는 이렇게 썼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정작 뒤에서는 내편은 살리고 상대편을 죽이는 정치 공작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는 의혹과 정황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문 정권은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등 모두 110명의 전직 고위 공직자를 사법 처리했다. 이들이 받은 형량만 130년이 넘는다. 그런데 이면에서는 국기를 흔들고 국정을 농단하는 일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런 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밑이요 왼팔·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다시 묻는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해명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알고 있었는가.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가.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가.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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