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협의체 예산안’ 통과는 국회법 무시
선거법·공수처법 강행하면 저항 부를 것
여당은 다수결 원칙을 지켰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형식적 다수’를 위해 교섭단체 요건도 갖추지 못한 군소정당을 들러리 세우면서 정작 107석을 가진 원내 제2당을 패싱한 것은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 초법적 발상이다.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민주화 운동 경력을 앞세우는 민주당 정권 아래서 벌어졌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4+1협의체는 예산 심사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투명성을 의심받는 ‘깜깜이 심사’는 주권자이자 납세자인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나쁜 선례다. 이후 정치적 부담과 후유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대폭 증액된 수퍼 예산안의 내용이다. 국회를 통과한 예산은 정부 원안(513조4580억원)에서 1조2075억원이 순삭감됐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문제투성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포퓰리즘 예산과 나랏돈을 퍼부어 구멍을 메우려는 선심성 복지·사업 예산이 넘쳐난다. 올 10월 현재 누적 재정적자가 벌써 45조5000억원에 달했는데도 정부는 내년에 60조원에 달하는 적자 국채 발행을 계획중이다. 결국 적자 재정과 국가 부채로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미래세대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넘기는 몰염치한 처사다.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 국회의 책임은 절대 가볍지 않다.
평소 의회주의자를 자처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공정성·중립성 시비에 휘말린 건 아쉽다. 예산안 처리 직전 당시 문 의장은 “1시간만 기다려 달라”는 심재철 원내대표의 요청을 묵살하고, 의장 화장실에서 주승용 부의장에게 의사봉을 넘겨줘 예산안을 기습처리하게 해 야당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한국당 주변에선 벌써부터 “4+1협의체가 선거법·공수처법의 강행 처리를 위한 사전 예행연습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온다. 이어지고 있는 국회의 파행이 당초 성격이 다른 쟁점 법안(선거법·공수처법 등)을 정치적으로 맞교환함으로써 시작된 만큼, 이런 의심이 나오는 상황도 이해 못할 게 아니다.
툭하면 반대·장외투쟁을 일삼는 한국당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수적 우세와 힘으로 밀어붙이는 독선·독주의 정치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더욱이 선거법은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고, 공수처법 등은 사법행정의 근간을 새로 만드는 중차대한 법안이다. 이마저도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정치 파탄은 물론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더 큰 불행한 사태에 빠지지 않도록 20대 국회의 마지막에라도 타협의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