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정치, 외교.

외교인가, 유치원생 싸움인가

화이트보스 2020. 3. 12. 09:04



외교인가, 유치원생 싸움인가

    
입력 2020.03.12 03:18

앞 정부 시절 일본 정치인이 워싱턴에서 "한국이 '고자질 외교'를 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우리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때 "일본 지도자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자 일본이 그걸 '고자질'이라고 한 것이다. 반대로 미국 관료나 싱크탱크 인사가 일본 편을 들 때 우리 당국자는 "일본이 '돈질 외교'를 한다"고 했다. 일본이 공공 외교에 큰돈을 쓰는 걸 두고 한 말이다.

▶가위바위보도 지면 큰일 난다는 게 한·일 관계다. 외교 무대는 더하다. 어느 미국 관리는 "한·일 외교관들은 평소에는 점잖은데 경쟁할 일만 생기면 전투적이 된다"고 했다. 미 대통령이 한쪽만 방문한다든지, 정상 행사에서 의전의 격이 상대보다 낮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려놔야 한다. 한 외교관은 "일본에 밀렸다는 여론이 일면 또 얼마나 시달릴까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이런 싸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은 좀 심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일본은 불투명하고 소극적 방역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한국·중국인 입국을 제한했다. 한국은 비슷한 조치를 취한 100여 국가에는 별소리 안 하다 일본에만 펄쩍 뛰며 바로 맞불을 놨다. 일본은 "한국에 사전 통보했다"는데, 청와대는 바로 "그런 일 없었다"고 맞받았다. 복잡한 외교 합의도 아니고 단순 사실을 놓고도 180도 다른 말이 나온다.

▶이런 진실 게임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작년 말 지소미아 합의 후 청와대는 "일본이 사실과 다르게 발표한 것에 대해 사과를 받았다"고 했는데, 일본은 "사과한 사실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에 공격용 레이더를 겨냥했는지 여부를 놓고 양국은 서로 "거짓말 말라"며 얼굴을 붉혔다. 무역 마찰 회담 후에는 "수출 규제 철회를 요구했다"(韓)→"그런 말 없었다"(日)→"일본에 왜 갔겠냐"(韓) →"회의록에도 '철회' 단어는 없다"(日)는 공방이 오갔다. 이 정도면 외교가 아니라 거의 유치원 아이들 다툼이다.

▶아베 총리는 한국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노골적인 일본 정치인은 처음이다. 미국만 붙잡으 면 된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일본을 국내 정치에 이용한 역사는 오래됐다. 문재인 청와대는 '일본 비난'이라면 외교부에 맡겨도 될 일을 굳이 직접 마이크를 잡는다. 한·일이 상대를 때리면 국내 지지율은 오른다. 그러니 별일 아닌 사안까지 목청을 높인다. 이런 한·일 정권의 '적대적 공생'이 계속되는 한 양국 간 유치하고 소모적인 싸움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1/20200311036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