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강의문화 개선 할 수 있는 기회
현장감 없는 강의는 한계 있어
‘구식 강의’ 애드립 도움 되기도
중요한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니 조교가 개입해야겠다. 수동 촬영이 되는 셈이다. 막상 하려니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120여 명의 학생이 앞에 앉아 있지 않다. 초롱초롱하게 눈앞에서 반응하는 현장감이 없다. 같은 품질의 강의가 나올 수가 없다.

알고리즘 여행 4/10
강의실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흥분을 전달하는 곳이기도 하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말했다. “음악가는 스스로 감동하지 않으면 남을 감동시킬 수 없다.” 가르치는 사람도 비슷하다.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흥분감이 없으면 배우는 사람이 흥분감을 갖도록 하기는 힘들다. 75분 강의에서 핵심적인 내용만을 말하고 끝낸다면 대개 30분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이해도를 높이고 관점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지원 사격이다. 보충 설명이거나 내용과 은유적 연관성을 갖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틀어서 질문 던지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옛날이야기, 기업체에서의 관련 경험, 이런 것들이 학생들에게 주제에 대한 관점을 다양하게 해서 체화를 돕는다. 농담도 수업의 중요한 요소다. 학생들의 반응을 직감으로 느껴서 설명 분량을 조절할 수도 있다. 이런 대부분의 행위들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혼자 말하는 강의에서는 구사하기 힘들다. 그래서 강의가 빨리 끝난다.
강의의 많은 부분이 미리 계획되지만 강의에 몰입이 되면 애드립이 나온다. 강의 계획 때는 생각지 못했던 내용인데 더 적합한 경우도 많다. 이런 건 다소 흥분이 되고 우쭐한 상태에서 나온다. 없는 날은 맥이 빠진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강의 직후의 모양이 있다. 셔츠의 한쪽이 바지에서 삐져나와 있고 몸은 약간 열이 나있는 상태. 한 곡의 노래를 적당한 크기의 감정으로 잘 부른 후의 느낌 같은 것. 가끔은 감기도 낫게 한다.
같은 강의를 반복하다 보면 가장 큰 문제가 흥분감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다. 잘 아는 내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흥분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다른 책을 읽기도 하고 생각도 하면서 강의에 대한 은유적 단초를 잡으려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르치는 사람도 시야가 넓어진다. 비대면 강의를 하니 이런 마음의 상태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유튜브에서 청중 없이도 명랑하게 강연하는 강사가 존경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비자발적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현장의 흥분이 없는 한 학기를 보내고 있다. 빨리 사태가 진정되어서 ‘구식 강의’를 하고 싶다. 필자의 재주로는 비대면 강의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현장 강의의 퀄리티에 근접할 자신이 없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