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물 대신 골드바" "매달 한 돈씩 金적금"
"예물 대신 골드바" "매달 한 돈씩 金적금"
조선일보
입력 2020.07.16 04:20
사상 최고치 행진 '금테크 열풍'
15일 낮 서울 종로3가에 있는 한 귀금속 상점에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다. 최근 금값이 뛰면서 금 거래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14일 오후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있는 민간 금(金) 유통업체인 한국금거래소. 벽면 한쪽 모니터에 '오늘의 순금 시세: 28만원(1돈·3.75g)'을 알리는 문구가 깜빡이고 있었다. 한 50대 여성은 "올봄 자녀 혼수로 1㎏짜리 골드바 2개를 1억4000여만원에 구입했는데, 금값이 더 올랐다고 해서 투자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평일 오후인데도 이날 거래소에는 금을 사고팔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서모(35)씨는 짝 없는 14k 귀걸이, 18k 목걸이 펜던트 0.2g을 3만3000원에 팔고 갔다. 4년 차 직장인 박모(33)씨는 "지난 3월부터 투자 목적으로 매달 금 한 돈(3.75g)씩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안전 자산인 금 가격이 고공행진하면서, 일반인들도 앞다퉈 금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15일 한국거래소(KRX) 금 시장에서 금 현물 가격(1g)은 전일에 이어 7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KRX 금 시장이 개설된 2014년 3월 이후 역대 최고치다. 그러자 20·30대 소비자도 결혼 예물로 반지 대신 골드바를 구매하는 등 '금테크(금으로 하는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결혼반지 대신 골드바, 금테크 나선 20·30
이날 오후 서울 종로3가의 귀금속 거리. 결혼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한 금은방 직원은 "명품 주얼리 브랜드에 빼앗겼던 혼수 예물 시장에 신혼부부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은 결혼반지 같은 전통 예물이 아니라 주로 '골드바'를 사러 온다"고 했다. 지난 2월 예물로 명품 결혼반지를 준비하려다 골드바 800만원어치(90g)를 사들였다는 30대 신혼부부는 "어차피 반지는 매일 끼고 다니지도 않을 것 같아, 나중에 '리셀(resell·재판매)'하기 좋은 골드바를 갖고 있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금테크는 밀레니얼 세대가 이끌고 있다. KRX가 지난 3월 말 국내 5대 증권사의 '금 거래 위탁계좌'를 분석한 결과, 보유자의 38.5%가 30대, 17.6%가 20대였다. 절반 이상(56.1%)이 밀레니얼인 셈이다. 40대는 28.8%, 50대는 11.5%, 60대 이상은 3.6%였다. 한국거래소는 "증권 시장에 익숙한 젊은 층이 금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금 거래량은 무섭게 치솟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KRX 금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액은 57억8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9.8%, 거래량은 90㎏으로 106.4% 늘었다. 상반기 누적 거래액(7103억원)은 이미 지난해 연간 거래액(5919억원)을 뛰어넘었다. 거래량은 11.064t으로, 한 돈짜리 돌반지로 환산하면 반년 동안 295만개가 팔려간 셈이다. KRX 금 시장은 올해 거래 대금이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을 장신구나 기념품으로 보지 않으면서, 금이 유통되는 형태도 바뀌고 있다. 과거 금값이 뛸 때는 사람들이 반지나 거북이, 열쇠 같은 장신구·기념품 같은 형태로 금을 소유했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디자인이나 의미보다는 중량·순도만 따지는 분위기다. 서울 종로의 한 금은방 관계자는 "환금성(換金性)이 좋은 순도 99.99% 골드바가 인기"라고 했다.
◇쏟아지는 매물 잡아라… 금은방 출장 매입까지
금을 사려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금값이 올랐을 때, 팔려는 이들도 많다. 특히 코로나 여파로 경기(景氣)가 어려워지자, 급전을 마련하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금거래소 김수호 감정사는 “석 달 전에는 무급 휴직을 하던 30대 주방장이 생계비가 필요하다며 15돈짜리 금목걸이를 팔았고, 지난 10일에는 30대 후반 부부가 아파트 중도금을 마련한다고 금 열쇠, 아기 돌 반지 등 집안 금붙이를 모두 팔고 2000만원을 받아갔다”고 했다.
이런 금 매물을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금은방들은 ‘금 매입 시세, 더 드립니다!’ 같은 안내문을 붙이며 호객 중이다. 일부 점포는 ‘출장 매입’ 서비스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외출을 꺼리는 자산가를 직접 찾아가 현장에서 금을 사는 것이다. 경력 20년 이상인 한 금 거래소 직원은 “출장까지 가서 금을 사는 건 코로나로 새롭게 나 타난 현상”이라며 “지난 4월엔 한 고객이 금 50돈을 되팔고 싶다고 해서 목포까지 찾아갔다”고 했다.
금에 눈독을 들이다 일탈을 하기도 한다. 지난 12일 부산의 한 장례지도사는 시신의 금니 10개를 뽑아 훔친 혐의로 1심 법원에서 징역 10개월 형을 받았다. 그는 재판에서 “코로나 영향으로 월수입이 100만원에 불과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6/20200716003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