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다" 대신 "고맙다"… 엄마가 변했습니다
"나는 괜찮다" 대신 "고맙다"… 엄마가 변했습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8.22 03:00 | 수정 2020.08.23 08:21
[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엄마의 노화를 지켜보는 건 이중의 아픔입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과, 그러한 상황에 결국은 익숙해져 버리는 무감각. 함께했던 추억 속의 빛과 향은 이토록 선연한데, 다가올 시간 속의 고통은 둔탁하기만 합니다. 엄마들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홍여사
일러스트= 안병현
"엄마가 아무래도 이상해. 치매 초기가 아닌지, 검사 한번 받아봐야겠어."
내 마음에 오래 잠겨 있던 무거운 말을 동생은 그렇게 툭 뱉었습니다.
"건망증이 심해진 건 나이 탓이려니 했는데, 이젠 아예 없는 얘기를 만들어내더라니까?"
"왜? 무슨 일인데?"
약 두어 달 전부터였다고 합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은 뭐 잡수셨느냐고 물으면, 네 언니가 와서 둘이 찌개 끓여 맛있게 먹었다거나, 밥 비벼 나눠 먹었다는 대답이 나오기 시작한 것 말입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하고 예사로 넘겼는데 자꾸 듣다 보니 좀 이상하더랍니다. 아무리 가까이 산다지만 언니가 이렇게 자주 들여다보기는 어려울 텐데…. 혹시 엄마가 당신 걱정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언니가 왔다 갔다고 둘러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한번 떠봤다네요. "언니 오늘 동창 모임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랬더니 엄마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그 모임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취소돼서 우리 집에 잠깐 다녀갔다"고 척척 둘러대더랍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생전 허튼소리 한 적 없는 엄마가 금방 들통날 말을 그렇게 꾸며대다니요. 게다가 삼시 세끼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지겨웠으면 그런 말을 지어내기라도 했을까 싶으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치매 검사보다 우선, 엄마 모시고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싶어지는데 이어지는 동생의 말은 저를 또 한 번 놀라게 하네요.
"심각한 건 이제부터야. 엄마가 또 뭐랬는지 알아? 내년부터는 언니네랑 합가해 살 거래. 희준이 입시만 끝나면 그러기로 했다며. 그 말이 맞아?"
"……."
"아니지? 아닐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엄마한테 슬쩍 말해봤지. 사위 불편해서 합가할 수 있겠느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하는 말이, 묵은 사위는 아들이나 마찬가지래. 또 뭐랬냐면, 좀 불편해도 서로 참아야지 어찌하겠느냐고, 어른하고 같이 살면 저희한테 뭐라도 도움이 되지, 해가 될 건 없다고 그러는 거야. 세상에 그 깔끔하고, 경위 따지던 우리 엄마 맞아?"
동생은 엄마의 낯선 변화가 치매의 시작일까 봐 두렵다고 했습니다. 언니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어떤 것 같으냐고 묻더군요. 저는 잠시 생각한 끝에, 치매는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엄마 집은 여전히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예닐곱 가지나 되는 약도 빠짐없이 잘 먹고 있으며, 좋아하는 트로트 프로그램도 시간 맞춰 챙겨 보고 있으니까요. 합가 얘기는, 어쩌면 내가 부지불식간에 그런 뜻을 비쳤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까지 대학 보내고 나면 그때는 엄마를 모실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은, 비록 생각에 그칠지언정 전부터 늘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같이 살잔다고, 그 말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그러자고 하는 게 이상하잖아. 우리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뭐야? 자식하고 같이 사는 건 서로 못할 짓이라고 했잖아. 딸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것도 얼마나 불편해했어?"
엄마가 변했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 동생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실은 얼마 전부터 저도 그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식한테 짐이 되고 싶진 않다는 말을, 엄마는 이제 안 하십니다. 불편하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나는 괜찮다는 말도 안 하십니다. 그 대신, 고맙다, 너무 좋다, 궁금하다는 말을 자주 하시죠. 엄마는 이제 뭐든 받고 싶어 합니다. 알고 싶어 하고, 나누고 싶어 합니다. 우리 집에 오셔서도, 예전처럼 불편해하지 않으십니다. 퇴근한 사위, 하교한 손자, 손녀를 붙잡고 이것저것 묻고 참견하십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내가 왜 너희 가족의 오붓한 휴식 시간을 방해하느냐고, 해도 기울기 전에 당신 집으로 돌아가셨을 테니까요. 그러던 엄마가 요즘은 우리 집 소파에서 꾸벅꾸벅 잠드는 일도 많습니다. 방에 들어가 편히 주무시라고 깨우면, 엄마는 말하죠. "내 집에서는 오라고 오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 오던 잠이, 어째 너희 집에만 오면 이렇게 달콤하게 쏟아지는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서글픔 속에서 조금씩 깨달아 갔습니다. 노인이란 밤에 혼자 계시게 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 여유를 즐기던 노인들도 어느 시점엔 혼자 사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며 혈육의 온기를 찾게 되어 있다는 것, 우리 엄마에게 바로 그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알았으면서도 지금껏 엄마를 위해 선뜻 합가를 결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남편 눈치도 살피고 애들 상황도 돌아봐야 했지만, 그보다는 제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되어서 때를 미루고만 있었습니다. 노인을 혼자 둬선 안 된다는 슬픈 깨달음은 다른 슬픈 깨달음과 어깨를 겯고 있더군요. 어느 자식도 부모 한 분을 길 끝까지 동행해 드리지 못한다는 깨달음 말입니다. 엄마가 아직 꼿꼿하고 깔끔하던 때에는 모시는 일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내 어깨에 허물어지듯 기대오며, 무게중심을 잃어가자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엄마가 나만 바라볼수록 나는 딴청을 피우게 되더군요. 모르는 척, 바쁜 척, 없는 척…. 그러다 오늘 문득 밀린 시간의 독촉장을 받은 겁니다.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엄마를 만나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나는 일단 엄마 집으로 갔습니다. 어두운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엄마가 사는 403호를 한동안 올려다봤지요. 이웃 집들과 다름없는 환한 불빛이지만, 그 빛은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운 빛이라는 걸 저는 압니다. 그 불빛을 올려다보며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나야."
"응, 그래…."
"뭐 하고 있었어? 저녁은?"
"벌써 먹었지."
순간 엄마는 기운이 솟아나는 듯,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습니다. 엄마가 아직 꼿꼿하고 깔끔하던 때의 그 목소리로,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네 언니가 와서, 같이 열무김치에 소면을 말아 먹었어."
"?"
"걔가 워낙 면을 좋아하잖니. 오늘도 엄마 가 말아주는 열무국수 먹고 싶다고 낮에 전화했더라고…."
엄마는 큰딸과 함께 먹은 열무국수 얘기를 한참 더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엄마의 작은딸이 되어, 그 얘기를 잠자코 들었지요. 이 모든 건 뇌혈관과 전두엽이 일으키는 오류일 뿐, 그 누구의 탓도,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우기며….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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