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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다음날 배달된 김대중 친필편지

화이트보스 2022. 6. 13. 15:42

간 이식 다음날 배달된 金大中 친필편지

‘고노담화’ 주역 감동시킨 DJ, 우익 성향 총리도 깍듯이 배려
尹, DJ의 對日 전략 연구해 기시다의 적극 호응 끌어내길

입력 2022.06.13 03:00
 
 
 
 
 

2002년 4월의 일이다. 한국에 ‘위안부 담화’로 널리 알려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이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의 아들인 고노 다로(나중에 외무상 역임)가 선뜻 간의 일부를 기증해 이뤄졌다.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2000년 03월 27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고노 요헤이 전 외상을 접견하고 있다./e영상역사관

그 다음 날 오전 9시. 고노의 비서관이 의원회관에 출근하자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고노 선생님께 보내신 겁니다”라며 DJ의 친필 위로 편지를 건넸다. 전날 고노의 수술 소식을 들은 DJ가 편지를 써서 마지막 비행기 편에 보낸 것이다. 고노는 자신의 회고록 ‘일본 외교에 대한 직언’에 DJ에게 감동한 사실을 기록했다. 그를 ‘외경(畏敬)하는 정치가’라고 불렀다.

DJ의 일본에 대한 배려는 친한파뿐만이 아니었다. 2000년 4월 ‘한일 미래 파트너십 선언’ 주역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자민당 간사장이던 모리 요시로(森喜朗)가 갑자기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는 한국에 호의적인 정치인이 아니었다.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던 우익 성향 인사였다.

그럼에도 DJ는 개의치 않았다. 첫 남북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2000년 5월 모리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모리 총리님 덕분”이라며 자신을 바닥에 내려놓고 모리를 하늘 높이 띄웠다.

오부치 장례식이 남북 정상회담 일주일 전인 6월 8일로 확정됐다. DJ는 두말없이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장례식에 참석, 모리와 다시 만나면서 일본이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리가 한국을 돕고 나섰다. 2000년 6·15 합의문이 나온 직후인 같은 해 7월 오키나와에서 주요 8국(G8) 회의가 개최됐다. 모리가 주최국 의장으로 ‘G8 한반도 특별성명’이 채택되도록 힘을 썼다. 한국 외교부가 만들어 준 초안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인 성명이 채택됐다. “남북 정상회담을 열렬히 환영하며 이 회담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진전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 이후 2002년 평양 북·일 정상회담, 2003년 6자회담 개시로 이어지며 한동안 ‘동북아의 봄’이 계속됐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전(前) 정부에서 2018~2019년 한반도 상황은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보다 여건이 더 좋았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도 세 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어게인 2000년’이 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향후 북한에 식민지 배상 차원의 경제적 지원을 할 일본의 배제에서 찾는 분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지적했듯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를 우군화하지 못한 것이 파국적인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2020년 ‘조선반도와 일본의 미래’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문 대통령과 그 정권에 결여된 것은 남북 화해 진전을 도모할 때 일·한(日韓) 간 의사소통을 깊게 하는 복안(複眼)적인 외교전략”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선 ‘백지상태’라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신뢰를 지금보다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말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의에 참석,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 총리를 처음으로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 외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일본의 존재를 인식, 상대방을 감동시켰던 DJ의 전략을 세밀하게 연구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기시다의 적극적 호응을 끌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