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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위구르 중국에 화약고

화이트보스 2008. 9. 28. 10:02

중국의 화약고'… 올림픽 폐막 앞두고 긴장

무슬림이 사는 중국땅, 신장 위구르를 가다

두차례 테러로 100명 이상 당국에 연행

한족과 이질감 커… 올림픽 중계도 안봐

카스(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최준석 국제전문기자 jscho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서쪽 끝 도시 카스(喀什). 수도 베이징(北京)보다 반대편 서쪽의 지중해변 국가 레바논의 베이루트가 더 가까운 터키계 위구르족의 땅이다. 카스가 속했던 위구르인의 나라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은 1949년 중국 공산당에 무너진 뒤 이곳은 중국어로 새 영토라는 뜻의 '신장'(新疆)이라고 불린다.




"당신 같은 외국 기자가 수십년 동안 이곳에 와서 기사를 썼지만 달라진 것 없어요." 21일 카스 시내의 '타흘라크룩' 청과물시장 앞에서 만난 상인 무함마드(46)씨는 기자에게 되레 역정을 냈다. 그는 "누가 우리 위구르인이 게으르다고 하느냐" "한족(漢族)만 열심히 사는 게 아니다"라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말하지 않았으나 상상할 수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한족 중국인만 아니면 카스는 중동 국가의 도시로 보인다.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첨탑)과 낙타, 카펫은 영락없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다. 위구르인은 한족과 외모뿐만 아니라 종교, 음식, 복색, 언어, 글자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카스에선 지난 4일과 12일 두 차례의 무장 공격이 발생, 19명 이상의 중국 경찰이 사망했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 방해를 노리는 위구르족 분리주의자의 소행이라고 했다. 위구르인들은 1990년대 중반 옛소련이 와해되면서 자신들의 바로 옆에서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 독립하는 걸 보면서 중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에 눈을 떴다. 베이징올림픽 폐막일(24일)을 목전에 둔 카스에는 상당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지난 4일 첫 무장 공격 이후 카스에서만 100명 이상이 당국에 연행됐으며, 이중 고문과 구타를 당한 사람이 많다고 위구르 해외 망명 단체 '세계위구르회의'는 말했다(독일 DPA통신 21일 보도).



외견상 평온하지만 표면 아래는 다르다. 냉기가 흐른다. 베이징과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가 올림픽 열기에 사로잡혀 있다면 카스는 다르다. 도시 남동쪽 귀자 거리의 이스탁발 휴대전화 중고시장 앞 노점상 빙수 집에 앉아있는 손님들은 인도산 '발리우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올림픽 경기보다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올림픽 게임 TV로 안 보느냐'는 질문에 "먹고살기 바빠서" "일해야 하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위구르인은 절대 드러내놓고 베이징 정부를 비판하는 법이 없었다.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무장 공격사건의 범인이 어떤 사람들이냐는 질문에 '분리주의운동가'라는 뻔한 말조차 해주는 사람도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들은 뭐라 답변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했다.


위구르인들은 대부분 무슬림. 이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일상화하며 살고 있다. 모스크에 예배 보러 가는 행위가 제약된다. 18세 이상의 성인이 아닌 미성년과 학생(대학생 포함)의 모스크 출입도 금지된다.


위구르족의 분리운동은 외부 세계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남쪽의 티베트는 '달라이라마'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지만 위구르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맞아 카스에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올림픽 표어가 도배질되어 있었다. 도시의 최대 규모인 이드카 모스크 앞 상가 건물과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런민둥루(人民東路)의 건축 공사 현장에 붉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크게 써 붙여놓았다. 과연 현실은 그런가? 위구르인과 한족 중국인이 하나의 꿈을 꾸고 있는지는 본인들 스스로 잘 알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