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1636년 병자호란 77

조선의 두 사신, 목숨 걸고 청나라에 대항한 결과 [중앙일보] 입력 2017.12.26 15:08 수정 2017.12.26 15:47 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조선의 두 사신, 목숨 걸고 청나라에 대항한 결과[중앙일보] 입력 2017.12.26 15:08 수정 2017.12.26 15:47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기자채인택 기자SNS 공유 및 댓글SNS 클릭 수12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SNS 공유 더보기조선 사신 나덕현과 이확, 목숨 걸고 청나라에 저항하다 ..

무능한 정권이 자초한 전쟁… 백성들의 붉은 피

무능한 정권이 자초한 전쟁… 백성들의 붉은 피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기사 인쇄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스크랩 글꼴 선택맑은고딕굴림 글자 크게 글자 작게100자평2페이스북0트위터0더보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 이메일로 기사공유 입력 : 2017.09.07 03:04 [90] 강화도 경징이풀의 비..

교과서엔 실리지 않은 치욕, 병자호란 쌍령 전투

교과서엔 실리지 않은 치욕, 병자호란 쌍령 전투 전사를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서 한번에 크게 패배하기도 사실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크게 패배하는 경우는 대게 상대방을 근거없이 얓잡아 보다가 털털 털리게됩니다 조선시대 우리조상들에게 잊을수 없는 큰 상처를 준 임..

“淸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 외교관 역할 다했다”

“淸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 외교관 역할 다했다” 고기정 특파원 기사보내기 기사보내기 페이스북 트위터 싸이월드 네이버 구글 폰트 뉴스듣기 drawData('DA_ARTICLE_BODY'); ? --> 입력 2014-08-26 03:00:00 수정 2014-08-26 03:00:00 中선양서 행적 기리는 문화축제 열려 청나라 초기 심양관이 있던 곳으..

1392년 이후 한(韓)민족은 안보(安保)위기를 스스로 극복한 적이 없다!

1392년 이후 한(韓)민족은 안보(安保)위기를 스스로 극복한 적이 없다! 북한 核미사일實戰배치 상황이란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와 국민의 자세를 보고 있노라면 이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생각하기조차 두렵다. 글 | 조갑제(趙甲濟) ..

中 “선진국 진입 30년 지나야 가능”

中 “선진국 진입 30년 지나야 가능” 공업현대화 수준 선진국의 3분의 1 불과 기술 해외의존도 높아 모방단계 못벗어 2004년 말 기준으로 중국의 공업현대화 지수는 선진국의 3분의 1 선에 불과하지만 사회주의 건국(1949년) 100년 안에 공업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1일 중국..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31 03:43 50대 남성, 울산지역 인기기사 [서울신문]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아 일방적으로 몰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군이 조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

(102)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2)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17 03:06 [서울신문]당시 포로들을 속환해 오는 방식은 몸값을 누가 마련하느냐에 따라 크게 사속(私贖)과 공속(公贖)으로 나눠지고 있었다.사속이란 일반 사민(士民)들이 스스로 마련한 몸값을 갖고 심양에 들어가 혈육을 데..

(101)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1)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②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10 03:41 [서울신문]병자호란 직후 청으로 끌려간 수많은 포로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한마디로 그들 피로인(被擄人)들은 시종일관 끔찍한 고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그들의 고통은 청군에게 사로잡히는 순간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