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보다 효도…끝내 사형…새벽 3시 장례식 ‘통곡’ 이진 기자 입력 2020-07-14 11:40수정 2020-07-14 11:4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공유하기닫기 1921년 8월 17일 크게보기 플래시백 『죽은 자식이나마 5년 만에 만났으니 다만 하룻밤이라도 내 방에서 같이 자야 하겠소.』 동아일보 1921년 8월 17일자 3면에 실린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 친아버지 박시규의 한 맺힌 말입니다. 박상진은 8월 11일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1918년 2월 일제 경찰에 붙잡힌 뒤 1년 6개월 만에 37년의 생을 마감했죠. 박상진이 이끈 대한광복회는 1910년대 최대 독립운동단체였습니다. 체포되기 전 안동의 한 마을에 숨어 망명 기회를 엿보던 박상진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