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부터 청산리 대첩까지… 혼란의 시대에 민족정신을 외치다
조선일보
입력 2020.04.28 03:00 | 수정 2020.04.28 08:57
[인물과 사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 [27] 광복 직후 민족의 재발견
美蘇 각축·좌우 대립 이어지자 소설 '청산리 싸움' 연재하고
이순신·한글 특집도 제작하며 짓눌린 민족정신 회복에 앞장
"역사적 전통적으로 상실한 민족정신을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어떻게 되찾느냐 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묵고도 새로운 중대 과제이다. 이에 답하느냐 못 하느냐가 우리 민족 존망의 기로(岐路)가 될 것이다."
광복 1년을 맞은 1946년 8월, 본지 1면에 실린 연재 '우리는 무엇을 할까'의 마지막회는 이렇게 끝났다. 기사 제목은 '민족심리 해부의 필요―정신독립 없이 민족독립 없다'였다. 복간 후 첫 편집국장을 지낸 김형원이 썼다.
광복의 기쁨은 잠시였다. 남북 분단과 좌우 대립 등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혼돈이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민족정신을 되찾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1946년 한 해에만 '청산리 싸움'(총 31회 연재), 한글 반포 500주년 특집, 충무공 이순신 순국 특집, 개천절 기획을 쏟아냈다.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패퇴시킨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장병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가장 빛나는 승리였던 청산리 전투 기록을 1946년 31회에 걸쳐 지면에 연재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 무장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과인 청산리 전투는 1946년 10월 9일 자부터 2면에 연재됐다. 소설가 박계주(1913~1966)의 '청산리 싸움'을 통해서다. 1920년 10월 김좌진과 홍범도 등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는 만주 화룡현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10여 차례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뒀다. 만주 용정이 고향인 박계주는 청산리 전투 주역 중 하나인 이범석 장군이 쓴 일기를 바탕 삼아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엮어 생생하게 기록했다. "광목옷에 물을 들여 카-키색을 만든 군복과 군모, 그리고 역시 흰 광목천에 검은 실로 수놓은 태극 모표. 그들은 혈관 속 끓는 피가 소리치며 진군하는 듯했고…".
'청산리 싸움' 연재를 시작한 1946년 10월 9일은 한글 반포 500주년이기도 했다. 일제하에서 문자보급운동을 펼친 조선일보에 이날의 의미는 각별했다. 1면 사설 '한글 반포 500주년'은 "문자가 있는 곳에 민족문화는 비로소 더 큰 광채가 난다. 세계의 많은 문화민족 중에서 과연 순전한 자기의 문자를 가지고 자기 문화를 형성한 민족이 얼마나 되는가"라고 썼다. 국어학자 이희승 등의 관련 기고가 함께 실렸다.
개천절의 의미도 다시 각인시켰다. 1946년 10월 27일(음력 10월 3일) 2면 상단은 백두산 천지(天池) 사진이 가득 채웠다. 이날 4면에 실린 담화문에서 당시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은 "해방 이후 조국 재건 성업에 진취하여 만년대계를 세우려는 이때 우리는 우러러 단군성조를 추모하고… 사리와 독선을 버리고 서로 애호하고 부조하야 남북의 통일과 완전 독립을 하루 바삐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이 개천절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보여준다. 개천절은 1949년부터 양력 10월 3일로 변경됐다.
물자 부족으로 하루 신문 두 면을 겨우 찍던 시절, 조선일보는 11월 26일 자 신문을 두 면 늘려 발행하면서, 2~3면을 펼쳐 충무공 이순신 순국 특집을 실었다. 작가 홍명희, 시인 이병기, 역사학자 이인영 등이 각자 분야에서 충무공 의 의미를 되짚었다. 2면 머리기사 '희세의 위걸 충무공 순국 349주년을 앞두고'는 "임진왜란은 우리 국사(國史)에 다시 없는 고난이었으나, 오히려 조선 민족은 근기있는 민족의식의 앙양과 창의적 전투력으로 적을 패퇴시켰다. 우리는 충무공을 통해서 민족혼의 강대한 교오(敎奧)를 보았다"고 썼다. 고난의 시대를 건널 힘, 민족정신 회복을 호소하는 외침이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28/20200428000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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