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96

박종인의 땅의 歷史]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그는 항복 후 집으로 돌아갔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결사 항전을 주장하던 그는 항복 후 집으로 돌아갔다조선일보 박종인 선임기자 음성으로 읽기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 크기 가 가 가 가 가 글꼴 돋움 맑은고딕 입력 2020.04.07 03:12 | 수정 2020.04.07 09:28 [207] 국난에 대한 두 가지 자세… 김상..

왕은 무릎을 꿇고… 무능한 정권의 '굴욕'이 서린 곳

왕은 무릎을 꿇고… 무능한 정권의 '굴욕'이 서린 곳조선 시대, 산성에 피신해 있던 왕이 적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에 머리를 찧은 굴욕의 역사가 있었다. 비록 그 시대 정권은 무능했다 비난받았지만, 지금까지 우뚝 서 있는 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영광을 누리고 ..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기운 뒤에야 외적이 와 무너뜨린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기운 뒤에야 외적이 와 무너뜨린다양상훈 주필기사 인쇄이메일로 기사공유기사 스크랩글꼴 선택글자 크게글자 작게100자평106페이스북21트위터더보기입력 : 2017.03.09 03:11 병자호란 겪은 인조 '적이 오기도 전에 나라는 병들었다' 통탄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외적..

인조의 ‘의리 외교’와 청으로 끌려간 여인들

인조의 ‘의리 외교’와 청으로 끌려간 여인들 기사입력 2014-07-16 03:00:00 기사수정 2014-07-16 10:11:48 기사보내기 기사보내기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싸이월드 네이버 구글 폰트 뉴스듣기 ‘양다리 외교’ 광해군 몰아내고 현실 무시한 인조의 親明反淸 국토 쑥대밭 만들다 외교 국방 ..

청군(淸軍) 본처들은 조선 여인에게 끓는 물을 끼얹고

청군(淸軍) 본처들은 조선 여인에게 끓는 물을 끼얹고 김기철 문화부기자 kichul@chosun.com Url 복사하기 스크랩하기 블로그담기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은 사람마다 원하는 바인데, 나는 지금 헤진 갖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이 일반 천민과 다름이 없고,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려 하는 ..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31 03:43 50대 남성, 울산지역 인기기사 [서울신문]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아 일방적으로 몰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군이 조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

(102)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2)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17 03:06 [서울신문]당시 포로들을 속환해 오는 방식은 몸값을 누가 마련하느냐에 따라 크게 사속(私贖)과 공속(公贖)으로 나눠지고 있었다.사속이란 일반 사민(士民)들이 스스로 마련한 몸값을 갖고 심양에 들어가 혈육을 데..

(101)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1)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②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10 03:41 [서울신문]병자호란 직후 청으로 끌려간 수많은 포로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한마디로 그들 피로인(被擄人)들은 시종일관 끔찍한 고난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그들의 고통은 청군에게 사로잡히는 순간부터 시작..

(100)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0)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①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03 04:31 [서울신문]'우리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탈출에 성공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하지만 일단 강을 건너 한 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다음에 도망치는 자는 조선이 도로 잡아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