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1636년 병자호란

1392년 이후 한(韓)민족은 안보(安保)위기를 스스로 극복한 적이 없다!

화이트보스 2014. 4. 11. 19:37

1392년 이후 한(韓)민족은 안보(安保)위기를 스스로 극복한 적이 없다!

북한 核미사일實戰배치 상황이란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와 국민의 자세를 보고 있노라면 이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생각하기조차 두렵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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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28일 김일성에게 서울이 함락된지 3개월 만에 국군과 UN군이 서울을 수복, 입성하고 있다. /조선DB

  *1592년 임진왜란: 보름만에 서울 함락
   
  *1627년 정묘호란: 후금(後金) 군대가 압록강을 넘은 지 11일 만에 평양 점령(조선, 휴전협상에 응하여 형제의 맹약을 하다)
   
  *1636년 병자호란: 後金의 전신(後身)인 청군(淸軍)이 압록강을 건넌 지 열흘 만에 서울 점령.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했다가 항복.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하였던 조선은 그 35년 뒤 정묘호란을 당하였고, 다시 그 9년 뒤 병자호란을 허용하였다. 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경론을 편 탓이다.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하였다. 
   
  1910년의 한일(韓日)합병도 역사의 실패로 배우지 못한 조선조의 종말이었다. 이런 체질은 요사이도 계속된다. 6.25 기습 남침은 불행중 다행히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파병 결단 덕분에 亡國으로 가지 않았다. 
   
  1989~1991년 사이 동구(東歐)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다. 사회주의 실패를 보고도 한국에선 좌익들이 득세하였다. 한국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을 당하고도 8개월 뒤 또 다시 연평도 포격을 당하였다. 두 번 다 응징을 하지 못하였다. 2011년 유럽에서 과잉복지로 경제위기가 발생하고,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과잉복지국가의 정권들이 바뀌었다. 이를 보고도 한국에서는 이른바 무상복지 선동이 기승을 부렸다. 
  
  2012년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성공, 핵(核)미사일 실전(實戰)배치가 임박하였는데도 좌익 정치인들은 미국과 협력해야만 가능한 미사일 방어망 건설을 반대한다. 강간상습범 앞에서 옷을 벗은 여인꼴이다. 옷을 입으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이들이 국회와 언론에 수두룩하다. 
   
  1870년 보불(普佛)전쟁 때 프러시아에 진 프랑스는 이를 갈다가 1914년에 일어난 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을 이겨 빼앗겼던 알사스 로렌 지방을 되찾았다. 이에 화가 난 독일은 히틀러를 등장시켜 1940년 전격전으로 프랑스를 패배시켰다. 프랑스는 그러나 드골의 영도하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반격을 개시, 2차대전이 끝날 때는 승전국(戰勝國)으로서 패전(敗戰) 독일을 미국, 소련, 영국과 함께 분할 점령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다. 
   
  일본은 1274년 몽골 고려 연합군의 침공을 받았다. 하카다에 상륙한 연합군은 일본 가마쿠라 막부 군을 대파(大破)하였으나 폭풍을 만나 후퇴하였다. 그 7년 뒤인 1281년 몽골 고려 연합군 10만은 다시 일본을 침공, 상륙전을 벌였다. 이번엔 육전(陸戰)에서도 일본군에 밀렸다. 일본군은 몽골군의 재침(再侵)을 예상,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가 반격을 하였고 폭풍이 와서 정박중이던 연합군의 함선들이 크게 부서졌다. 살아남은 수만의 연합군은 돌아갔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에 미국 등으로부터 개항(開港)을 강요당하자 정신을 차리고 1868년 명치유신을 단행, 선제적이고 자주적 근대화에 착수함으로써 식민지 신세를 면하고 오히려 식민지 확보에 나섰다. 
   
  한국은 역사의 교훈에서 실패의 반복을 방지할 지혜를 배우는 민족이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거꾸로 배우는 듯하다. 즉 실패의 요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계속 키워가다가 더 큰 재앙을 잇따라 부르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지옥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이 그 공산주의의 득세를 허용했다. 사망유희! 죽어봐야 죽는 줄 안다는 말이 있는데 한민족(韓民族)은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실패의 요인을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분석하여야 대비책이 나온다. 실패의 요인을 남탓으로 돌리고, 변명만 늘어놓으면 실패의 원인은 치유되지 않고 재발하는 것이다. 조선조의 망국(亡國)은 오로지 나쁜 일본 때문이고, 고종(高宗)과 민비(閔妃: 死後에 명성황후)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가르친다.
 
 일본에 투항한 최고(最高)사령관(고종)은 미화(美化)하고 버려진 졸병들에겐 왜 끝까지 싸우지 않았느냐고 친일파(親日派)로 몬다. 이런 沒과학적 자세 때문에 조선조 개국(開國) 이후 한국은 안보(安保)위기를 스스로 극복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북한 핵(核)미사일실전(實戰)배치 상황이란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와 국민의 자세를 보고 있노라면 이 끔찍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생각하기조차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