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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안나푸르나

화이트보스 2008. 12. 25. 17:13

네팔 안나푸르나

넘어지면 바로
신(神)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묵티나트~좀솜~타토파니~베니~쿠스마~포카라 2박3일 탑승기
▲ 카그베니 업힐 구간을 지나면 멀리 구름 밑에 있는 목적지 묵티나트 사원이 보인다. 해발 약 3,500m이라 지금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2007년 5월19일(토). 카투만두 공항 활주로에서 네팔 입성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사이 환영하듯 한 줄기 소나기가 몰려오는 듯하더니 금방 구름이 걷히고 한국보다는 엄청 더운 날씨로 햇볕이 내리쬔다. 현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비원 윤기자 사장님이 우리들에게 환영 꽃다발을 일일이 걸어주셨다.

“나마스테(안녕하십니까)!”

한 무리의 짐꾼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버스와 승합차에 자전거와 짐을 싣고 시내에 있는 로얄싱기호텔로 이동하였다.

2007년 5월20일(일) 오전 6시 기상, 호텔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 후 안나푸르나를 넘어 좀솜으로 가기 위한 전진도시이자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로 이동하기 위해 아침 일찍 비행기에 올랐다. 잠시 후 구름 위에 기체가 오르는 순간 누군가가 “히말라야다!”라고 외쳤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설산과의 첫 만남은 우리가 왜 네팔에 와야했는지를 답해주고 있었다.


▲ 산악투어 3박4일동안 우리를 도와준 현지 가이드 파상과 짐꾼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사이 비행기는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를 눈앞에 펼치며 사뿐히 포카라 공항에 오전 9시경에 착륙하였다.

오늘은 자전거투어 첫 번째 날이다. 포카라에 있는 서울뚝배기(www.pokara.co.kr) 한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오후에 아름다운 페와 호수, 데이비드 폭포. 일본이 마나슬루 초등 기념으로 만들었다는 산악박물관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았다


2007년 5월21일(월). 오늘은 모두가 맘이 들떠 있었다. 좀솜으로 들어가는 그 첫 날이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이미 꼭 가져가야 할 짐들과 돌아와서 챙겨야 할 짐들을 분리했다. 일반 항공은 개인 화물이 20kg이지만 네팔 국내선은 15kg을 규정하고 있어 투어 중 꼭 휴대할 것만 가져가고 최대한 짐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오전 6시30분에 공항에 나와서 한없이 기다렸지만, 14인승 비행기에 실린 짐들이 손수레로 다시 내리는 광경을 본 순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시간은 8시30분이 지나고 있는데, 한 마디 안내방송도 없다. 마익수 대장은 아마도 현지(좀솜) 날씨가 좋지 않은 것 같고,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란다. 오전 10시까지 해당 노선의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그 날 비행은 공식적으로 취소되고 짐을 회수해서 돌아가야 한단다. 정확하게 10시에 취소사인이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지난번 소나기로 가지 못한 사랑코트(Sarangkot) 전망대에 가기로 하였다. 방법은 오토바이 투어였다.

2007년 5월22일(화) 전날 비행 취소로 깊은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의 포카라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오늘도 입산을 못하면 전체 일정에 영향이 있다. 대장과 침대에 누워 대책회의 아닌 대책회의를 하였다. 다른 회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새벽잠이 없으신 회장님은 호수 주변 아침 산책을 다녀오시면서 “오늘도 틀린 것 같네” 한 말씀 던지신다.

그렇게 우린 기운 빠진 모습으로 아침을 먹으며 오늘도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무엇을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 하늘에서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더니 드디어 호텔지붕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좀솜행 비행기입니다.“ 대장이 외쳤다.


▲ 투어 3일째 타토파니에서 베니로 가는 중에 만난 한 무리의 양떼.
좀솜에서 묵티나트로 거슬러 올라

불과 이륙 30여분만에 해발 813m 포카라에서 2,710m의 좀솜으로 튀어 올라왔다. 아직도 흥분된 표정들이 역력한 회원들은 잠시 신들의 땅에 초대되어 이 세상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마냥 흥분했다. 닐기리봉을 앞에 두고 초목 하나 없는 암갈색 산들이 빚어내는 태고의 분위기가 마치 달나라에 착륙한 것마냥 황량하고 바람마저 거칠게 불어댔다.

오늘은 산악자전거 투어 첫 날이다. 서둘러 라면과 미역국으로 점심을 때우고 묵티나트로 가기 위해 준비하였다. 대장님은 물과 차를 많이 마시라고 주문한다. 약간의 가슴 저린 느낌과 함께 왠지 포카라에 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자전거를 조립하는 사이사이 이슬이님은 열심히 차를 날라 회원들을 먹인다. 한의사인 그녀의 직업정신을 보는 것 같다.

우리 모습이 신기한지 짐꾼들이 몰려들어 자전거 조립과 점검하는 우리를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드디어 준비 완료. 체크포인트에 신고하고 묵티나트를 향해 정확히 오전 11시에 출발하였다. 공항 담벼락을 지나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묵티나트 마을을 지나니 거칠게 바람이 몰아친다. 오전 11시가 지나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분다고 하더니만 모래까지 날린다.

 

▲ 포카라에서 국내선을 타고 좀솜으로 이동한 후 묵티나트 가는 길에 있는 카그베니. 이 마을에서 계속 업힐 구간이고, 직진하면 무스탕 가는 길이다.
초목 하나 없는 황량한 산과 강, 암갈색의 지층들이 뻗어 있는 산들, 온통 자갈 바닥의 칼리간다키 계곡 사이로 강바닥의 검은 진흙과 섞여 탁류가 흐르는 강을 따라서 길이 길게 나있다. 이 강물이 무스탕에서 발원하여 좀솜, 포카라를 지나 네팔의 평원지대를 지나서 인도까지 흘러가는 강이라고 하였다.

강변길을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업힐이 계속되었다. 중간 중간 황량한 계곡 사이로 물이 공급되는 지역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마을 주변 푸른 보리밭과 암갈색의 황량한 태곳적 산들과 검은 탁류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마익수 대장은 떠나기 전에 지금 오르는 이 코스에서 분명 자전거를 버리고 싶을 것이라고 하였기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길은 대체적으로 경운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다소 자갈이 많아 업힐할 때 힘들었으나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러나 표고차 1,000m 오르막에서 분명 고소증에 대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우리는 계속 물을 많이 마셨다. 카그베니를 지나며 계속되는 오르막길이 나왔다. 이제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때론 지름길로 자전거를 끌고 메고 오르기를 몇 시간째, 멀리 설산 밑에 묵티나트 사원의 하얀 담벼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네팔 사람들이 살아생전 가장 가고 싶어하는 성지인 묵티나트(3,800m)에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오후 4시경에 도착하였다.

묵티나트의 그 유명한 밥말리 로지에서 간단히 계란 프라이와 맥주, 삶은 감자로 요기한 후 서둘러서 다시 좀솜을 향해 다운힐을 시작하였다. 포카라에서 출발이 늦어 오랫동안 머물면서 자세히 구경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었다. 사원을 둘러볼 그런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한번 온다면 꼭 며칠이고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곳이다.
▲ 긴 업힐 구간을 오른 후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 마익수 비단길 대장, 김승인 부평MTB 회장, 김종희, 이일주, 변영민, 차동혁, 박성립 회원(좌로부터).


가사까지 환상적인 다운힐

다운힐 코스는 환상이었다. 먼지를 날리며 신나게 달린다. 카그베니까지는 한번도 페달을 밟지 않아도 시속 40~50km는 족히 나올 정도로 길이 좋다. 그러나 넘어지는 날에는 오른쪽 계곡에서 신들을 만나야 할 정도로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또한 돌들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넘어지는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코스였다.

이 지역에는 산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지만 가시넝쿨이 자생하는데, 이것이 양과 당나귀들의 먹이였다. 양과 당나귀들의 배설물에는 그 가시가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되어 있어서 자전거 바퀴가 그 배설물을 밟으면 십중팔구 펑크가 났다. 이 구간에서 4대가 펑크 났다.

오후 7시40분경 해가 어둑어둑 질 무렵에 아무런 사고 없이 호텔로 무사히 모두 돌아왔다.


전날의 피곤함도 잊은 채 서둘러 아침 식사와 자전거 점검을 하고 오전 8시에 출발하였다. 오늘 구간은 54.4km이고 가사(Ghase)부터는 좁은 협곡이고, 약 5시간을 자전거를 끌고 타토파니까지 가야 한단다. 또한 이 코스는 공사 구간이라 오직 걸어서만 가야 하는 험한 코스라고 한다. 대장과 현지 가이드 파상, 이슬이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사(Ghase)까지 이동하고, 그 후는 걷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 업힐 최종 목적지 묵티나트 사원. 해발 3,800m 지점에 있는 사원으로, 네팔인들이 살아생전에 가장 가고 싶어하는 불교 성지다. 왼쪽 V자 계곡이 내년에 계획되어 있는 토롱라(5,416m) 고개 가는 길이며, 반대편에는 만탕(3,540m)이 있다.

시양(Syang)을 지나고 마르파(Marpha)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나왔다. 잠시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TV에서 러브인아시아의 ‘안나푸르나의 추억’편을 본 마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네팔 청년(디네스)과 한국인 처녀(김윤연)가 결혼하였고, 현재는 동대문에서 뿌자라는 네팔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7개월의 만삭에 청년의 고국 네팔에서도 마르파라는 오지 마을을 방문하여 그곳 축제에 참석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프로를 보면서 그의 고향에 꼭 들러보겠노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한국에서 온 우리를 그의 아버지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우린 계속 강변을 따라서 길게 뻗은 다운힐 구간을 달렸다. 한 무리의 당나귀 캐러밴도 만나고 중간중간 강가에 터 잡을 수 있는 곳엔 어김없이 접시를 쌓아놓은 듯 만든 밭에는 보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계속 고도를 낮추자 서서히 황량한 암갈색의 산들이 녹색의 나무들로 바뀌고, 소나무 군락 지대가 나오면서 지계곡에서 맑은 계곡물이 흘러들었다.

칼로파니(Kalopani·2,530m) 지역을 지날 때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폭포들이 만년설 녹은 물을 쏟아 붓고 있었다. 닐기리봉은 계속 우리 왼쪽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서서히 멀어져 갔다. 칼로파니에도 체크포인트가 있다. 군인들이 여권번호까지 모두 기록하며 철저하게 체크한다.


가사~타토파니 구간 5시간 들고 메고

점심은 가사(Ghasa·2,010m)에서 먼저 내려간 파상이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강변을 따라 내리막과 중간 중간 오르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장과 파상이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지금부터는 자전거를 끌고 메고 약 5시간을 가야 한다고 하니 바짝 긴장되었다. 좀솜에서 여기까지는 넓은 계곡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좁은 협곡으로 바뀌면서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길이 나있었다. 거세게 흘러내리는 협곡 탁류 위로 출렁다리를 건널 때는 오싹한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 묵티나트 사원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대원들, 해발 3,700m 지점이며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출렁다리를 건너니 이제는 자전거를 메고 가야하는 거친 구간이 계속되었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서서히 지치기 시작하였다. 또한 절벽길 사이로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뜩 짐을 실은 당나귀 캐러밴이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아슬아슬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아! 이것이 진정한 네팔이구나!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인간과 짐승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다나(Dana·1,400m) 지역을 통과할 때는 정말 깎아지른 협곡 사이에 바위를 깎아서 길을 낸 구간이 나왔다. 계곡 건너편에서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수십 명이 절벽에 붙어서 길을 내고 있었다. 장비라곤 망치, 곡괭이, 삽이 전부다. 아마도 우리가 지나는 이 길도 몇 십 년이 걸려서 만들어진 최상의 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5시간 동안 메고 끌고 하며 온천 마을 타토파니(Tatopani·1,040m)의 쿠스마 온천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해가 어둠이 깔린 오후 8시40분경이었다. 이미 로지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 또는 술을 마시면서 오늘 고생한 구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서둘러 식사와 술을 마시며 오늘 구간에 대한 이야기와 내일 걸어야 할 구간에 대해 토론하였다.


▲ 투어 2일째 좀솜에서 온천마을 타토파니 구간에서 협곡의 구름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대원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모두들 너무나 지치고 피곤하여 천장에 붙은 도마뱀과 꿀맛 같은 동침을 하였다. 자전거도 들여놓지 못한 채로….

티블량에서 우리는 맛있는 망고, 야자수 열매쥬스, 사과 등으로 배를 채우고 베니를 향해 달렸다. 과일은 모두 저울로 무게를 달아서 팔았다. 베니까지는 포카라에서 차가 들어와서 그런지 마을이 크고 다른 곳보다 더 부유하게 사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미인들이 많았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모든 짐을 버스에 싣고 포카라까지 들어가는 팀과 자전거를 탈 팀으로 분류하여 운행하기로 했다. 포카라까지는 여기서 60~70km 정도 되고, 중간 쿠스마와 그곳을 지나서 엄청난 고개가 두 개 있는 것으로 지도에 나와 있다. 일단 쿠스마까지 가는 것으로 정하고, 그곳에서 상황을 보고 차로 포카라까지 들어갈 것인지를 판단하기로 하고 서둘러 출발하였다.

베니를 지나서 비포장길은 자갈밭이어서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약 1시간을 달리니 포장도로가 나왔다. 그러나 그 길도 신나게 달리기를 잠깐 쿠스마를 올라가는 큰 고갯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막에서 자전거 변속기에 문제가 생겼다. 대충 손을 보고 쿠스마까지 갔고, 결국 우리는 쿠스마에서 이번 여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로 했다.
한 무리의 동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우리는 차가 올 때까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놀았다. 약 1시간이 지연된 시간에 버스 한 대와 지프 한 대가 도착하였다. 포카라까지 가는 길은 정말 큰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서 한참을 올라갔다가 한참을 내려가니 멀리 포카라 시내가 보였다.


▲ 타토파니로 가는 중에 다나 마을에서 폭파작업으로 기다리는 중 만난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

그런데 이 기사 운전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만난 택시 기사는 별거 아니었다. 네팔의 국도는 차가 한 대 다닐 수 있는 길에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한쪽 바퀴를 포장도로에 내려야 하는데 이 친구 거의 우리는 안중에 없다. 공포의 버스에서 손에 힘 듬뿍 들어가고 잠을 청하기는커녕 앞만 쳐다보는데, 해 질 무렵인데도 전조등도 켜지 않은 차가 반대편에서 달려온다.

우리는 그렇게 속절없이 신들의 땅에서 속세로 거칠게 끌려 들어왔다. 아! 비록 힘든 여정이었지만 꾸밈없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수하게 살아가는 당나귀와 야크, 그리고 그 속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만년설과의 첫 만남의 충격! 황량한 암갈색의 좀솜! 길에서 만난 수도승과 망치 하나로 몇 년이고 길을 내고 있는 원주민들! 무거운 짐을 메고 언덕길을 오르던 불쌍한 당나귀! 아 안나푸르나여!


/ 글·사진 박창배 한국씨티은행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