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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운명(運命) 결정짓는 2009년을 향해

화이트보스 2008. 12. 26. 11:29

대한민국 운명(運命) 결정짓는 2009년을 향해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下流로 떠밀리는 중산층 줄여야
가슴에 불덩이 안고 사는 사람 늘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위협"

▲ 강천석 주필

1883년 3월 17일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외진 구석에서 장례식이 진행됐다. 조객(弔客)이라 해야 모두 11명밖에 되지 않는 초라한 장례식이었다. 관에 흙을 덮기 전 망자(亡者)의 오랜 친구가 조사를 읽었다. "그의 이름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필연적 몰락을 예언한 카를 마르크스는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내뿜으며 태어난다"면서 "노동자여, 그대들이 잃은 것이라곤 억압의 쇠사슬뿐, 성공하면 세상을 얻으리라"던 마르크스의 목소리는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그로부터 한 달여 지난 1883년 4월 21일, 런던에서 90km 떨어진 대학마을 케임브리지의 한 신혼부부 사이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부부는 아이 이름을 존 메이너드 케인스라고 지었다. 이 아이가 훗날 마르크스가 몰락을 예언한 자본주의를 벼랑에서 구출하는 이론을 제공하리라곤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정부 기능의 확대는 현재의 경제(자본주의)가 뿌리 뽑히는 것을 막는 유일한 수단이다. 공산주의는 자유와 효율을 희생시켜 가며 실업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를 올바르게 분석한다면 자유와 효율을 지키면서도 자본주의의 병(病)을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케인스의 처방전은 자본주의가 앓아 누울 때마다 되살아났었다.

나라 안팎의 경제연구소들이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을 3%대에서 1%대로 낮춰 내놓기 바쁘다. 엊그제부터 미국·영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통계가 또 날아들기 시작했으니 '내년 1% 성장'도 믿을 게 못 된다. 모든 산업 분야도 약 먹은 병아리처럼 시름시름 앓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무서운 호랑이는 실업(失業)이다. 현재의 실업률은 '공식적'으로 3.4%, 75만명이다. 그게 내년엔 100만명에 접근할 거라고 한다. 우리 경제가 2% 성장하면 그렇다니 1%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순간 실업자 숫자는 눈덩이 굴러가듯 커갈 것이다. 내년 2월 대학 문을 나설 50여만명의 대학졸업자 대부분은 취업 원서를 낼 곳조차 없다. 게다가 내년부터 쓰러지거나 조업을 단축한 기업들이 수많은 실직가장(失職家長)을 거리에 토해낼 것이다.

경제를 우선 살려야 한다는 데 이견(異見)이 있다는 넋 나간 사람들은 여의도 의사당 언저리의 수백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고민은 경제를 살려야 하지만 경제 문제에만 붙들려 있다가 체제의 근본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이 빚어져서도 안 된다는 데 있다. 1999년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 자동차 회장은 "직원 목을 자르는 경영자는 먼저 자신의 배부터 가르라"고 해 근로자의 박수를 받았다. 그 도요타가 비정규직 3000명을 자르고 나선 판이다.

우리 기업 사정은 물을 것도 없다. 생사(生死)의 경계를 헤매는 기업은 사람부터 자르려 든다. 그게 생존 본능이다. 현재 우리의 실직자, 취업준비자, 구직포기자, 불완전 취업자를 합하면 317만명이다. 공식빈곤층, 가장이 실업자인 가구, 노인 혼자 사는 가구를 합하면 600만 가구를 헤아린다. 여기에 수십만명의 새 실업자가 더해진다는 이야기다. 우리 국민의 42%는 스스로를 하류층(下流層)이라고 여긴다. IMF 시대가 남긴 상처다. 이번 국제금융위기의 폭풍이 잦아진 다음 또 얼마나 많은 국민이 하류층으로 떠밀려 갔을지 모른다.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쌓여간다. 우리 사회가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닮아가는 것이다. 풍선이 터지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두 기둥이 단번에 날아간다. 그날을 꿈꾸고 준비하는 세력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게 이 나라의 현재 실정이다.

다시 케인스의 염려를 들어볼 차례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생각은 옳고 그름을 떠나 흔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어느 미치광이가 하늘의 계시(啓示)를 들었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흘러간 학자의 이론으로부터 새로운 광기(狂氣)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우리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대할 때, 그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그냥 흘려 들을 때,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던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은 '경제의 해'이자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치의 해'가 될 것이다.


 

입력 : 2008.12.25 18:07 / 수정 : 2008.12.25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