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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수퍼 한우' 부활의 꿈… "한우 세계화 이룰 명품(名品) 만든다"

화이트보스 2009. 1. 1. 14:13

이천 '수퍼 한우' 부활의 꿈… "한우 세계화 이룰 명품(名品) 만든다"
우량 한우 귀 세포 채취… 유전자 똑같은 복제 송아지 만들어
몸무게 2배 울트라 한우·육질 좋은 대관령 한우 등 이미 '부활'
수원=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소띠 해를 며칠 앞둔 지난해 12월 말, 경기도 수원 농촌진흥청 산하 축산과학원 복제소 우리. 무게가 일반 한우의 두배나 됐던 울산 울트라 한우, 육질이 전국 최고였던 대관령 한우가 이곳에서 첨단 과학의 힘으로 부활하고 있었다. 오래전 도축돼 몸은 사라졌지만 세포는 남아 복제를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저기 솜털이 보송보송한 송아지 보이죠. 육질이 최상급이던 대관령 한우의 귀 세포로 복제한 한우가 이 송아지의 어미입니다. 말하자면 대관령 한우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3세대인 셈이죠."

축산과학원 성환후 동물바이오공학과장이 가리킨 우리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32마리의 복제 소들이 있다. 복제의 첫째 목표는 우량 한우 개발이다. "전국 각지에서 뛰어난 한우가 발견되면 일단 달려가 귀에 작은 구멍을 뚫어 세포를 얻습니다. 그 소가 언제 도축될지 모르니까요."
2001년 울산에서 몸무게가 일반 한우의 두 배에 가까운 850㎏이나 되는 '울트라 한우' 암소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당장 울산으로 내려가 귀 세포를 채취했다. 이 세포를 미리 핵을 제거한 난자와 융합시켜 대리모에 이식, 울트라 한우와 유전자가 똑같은 복제 송아지가 태어났다. 바로 2002년 5월 태어난 '초롱이'.

성 과장은 "울트라 한우는 사라졌어도 초롱이가 있으니 언제든 품종 개량 작업을 할 수 있다"며 "초롱이를 일반 수소와 교배해 낳은 후손들도 일반 한우보다 몸무게가 100㎏이 더 나간다"고 말했다.
▲ 한우 복제는 정상적으로 정자나 난자를 채취하기 힘든 우량 한우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거나 멸종위기 토종 한우를 복원하는 데 이용된다. 우리 연구진은 난자의 핵 제거나 핵 이식처럼 정밀한 손동작이 필요한 부분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국내외서 복제동물 안전성 확인

물론 아직은 복제 한우나 그 후대가 식용으로 허가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복제 가축의 안전성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허가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연합 식품안전청은 올 1월 각각 "복제 동물이나 그 후대가 일반 동물과 비교해 차이가 없으며, 그로부터 생산된 식육과 우유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에서도 축산과학원과 충북대에서 복제 한우와 그 후대가 일반 한우와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복제라고 하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식용 한우가 복제 공장에서 쉴 새 없이 생산되는 화면을 떠올린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성 과장은 "복제는 우량 한우의 유전자원을 확보하는 차원이며, 이후 다른 우량 한우와의 교배를 통한 자연적인 방법으로 우량 신품종 한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축산과학원은 식품으로 정식 인정을 받기 전에 불법 도축돼 유통되는 일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만들어진 복제 한우를 한데 모아 관리하고 있다.

멸종 위기종·거세 수소 보존에 필수적

우량 한우는 기존의 인공수정이나 수정란 이식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 문제는 거세를 했거나 난소가 손상돼 정액이나 난자를 구하지 못할 때다. 지난해 12월 초 2000여명의 불우이웃의 식사를 위해 도축된 이천의 '수퍼 한우'가 그렇다. 이 소는 몸무게가 1080㎏으로 일반 한우의 두 배에 이른다. 하지만 거세된 수소여서 정액을 채취할 수가 없었다. 축산과학원은 지난해 10월 이천 수퍼한우의 귀세포를 채취, 복제 준비를 마쳤다. 이천 수퍼 한우는 유전자 검사에서 순수 한우 혈통으로 나와 연구진을 들뜨게 했다.

복제는 칡소나 제주 흑우(黑牛)처럼 멸종위기 종 복원에도 유용하다. 칡소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몸에 칡덩굴처럼 줄무늬가 있다고 해서 '얼룩빼기 황소'로 불린 그 소다. 하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급속히 줄어 현재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제주 흑우 역시 조선 숙종 때 '국우(國牛)'로 관리되고 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육질이 우수한 한우이나 고기 양이 적다는 이유로 외면당해 1990년 무렵 수십 마리로 줄어들었다.

축산과학원은 칡소와 제주 흑우의 귀 세포를 채취해 복제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축산과학원 제주출장소로 10여개의 흑우 복제 수정란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축산과학원 양병철 박사는 "한우 복제 성공률은 100마리당 8마리 꼴로 낮다"며 "다시 복제 수정란을 만들어 새해 첫 복제 제주 흑우가 태어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제역 창궐 때가 가장 큰 위기

우리나라의 소 복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날 양 박사는 대당 1억원이 넘는 특수 현미경을 보며 난자를 다루는 시범을 보였다.

"옆 모니터에 난자가 보이죠. 여기에 작은 구멍을 내고 살짝 밀어주면 핵이 빠져나옵니다."

손이 크고 둔한 서구 과학자들은 1시간도 더 걸린다는 난자 핵 제거와 체세포 융합을 10여분에 끝낸다. 양 박사는 "한국인의 젓가락질 실력 덕분"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전염병이 퍼지면 속수무책이다. 성환후 과장은 1998년 첫 복제 한우 '새빛' 탄생에 참여한 복제연구 1세대.

"몇 년 전 구제역이 수원에까지 퍼졌어요. 복제 한우 우리에까지 감염되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들어갔어도 모두 도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세포만이라도 챙겨야 한다고 논의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죠." 다행히 구제역은 인근 축산농가에서 멈췄다.

복제 한우 우리를 보면 이 소가 저 소 같다. 행여라도 귀에 붙은 인식표가 떨어지면 어느 소가 세포를 줬는지, 복제 한우가 어느 쪽인지 알 방법이 있을까.

"코를 보면 털이 없는 부분이 보이죠. 거기에 사람으로 치면 지문 같은 무늬가 있어요. 그걸 보고 구별할 수 있어요."

양 박사는 "유전자가 거의 같음에도 불구하고 세포를 준 소와 복제 소는 코 지문이 다르다"고 말했다. 무늬의 회전 방향은 같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한우 세계화를 이룰 차세대 주자는 어떤 무늬일까.
입력 : 2009.01.01 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