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개입 주저해 기능마비
더 심각한 것은 은행권의 마비가 새해에도 풀리지 않고 상반기 내내 지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며칠 전 만난 시중은행 임원은 "8%만 넘으면 되는 BIS비율(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12%까지 올려 놓았지만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했다. 3~4월쯤 부실자산이 쏟아져 나오면 BIS비율이 다시 순식간에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도저히 자금줄을 풀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은행이 이런 마음을 먹고 있다면 작년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일부 은행들의 기능마비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세계 경제가 기로에 서게 되는 상반기에 은행이 문제가 되어 한국 경제가 위기에 몰릴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가서 정부가 부랴부랴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 기능을 살려내 봐야 이미 상황이 끝난 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언젠가 세계 경제 위기가 막을 내린 뒤 국가 순위에서 대한민국을 찾으려면 눈을 한참 밑으로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작년 금융위기 발생 후 곧바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들을 국유화(또는 부분 국유화)한 것은 경제위기를 넘기는 데 있어 은행의 기능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은행들의 마비 상태가 너무 길어지는 사이, 멀쩡한 기업들조차 은행으로부터 제때 대출을 받지 못해 부실화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달 LG경제연구원은 "현재 국내 상장기업 중 40%가 부실기업이 됐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냈다.
은행의 기능 마비에는 정부 탓이 크다. 현재 정부는 후순위채 매입 등을 통해 은행의 BIS비율 높이기를 도와주는 정도의 처방에 머물면서 말로만 "대출해 주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 임직원 입장에선 요즘처럼 앞날이 불안할 때, 뒷날 누가 책임질지도 모르는데 현재의 BIS 비율만 믿고 대출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은행 기능을 작동하게 만드는 직접적이고 강도 높은 정부 개입이 시급하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일부 은행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분 국유화'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은행에 '유동성 파이프 라인'을 만들어 놓으면 은행들이 안심하고 대출을 하고 부실기업 정리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방식을 피하고 있다. "아직은 그 정도로 은행 부실이 심각하지 않고, 지금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은행 주주들에 대한) 재산권 침해 소지가 생긴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이미 무너져 공적자금이 들어갔을 은행도 생겨났을 것이다.
시중에선 다른 얘기가 들린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일부 은행 경영진과 은행 건전성 감독에 실패한 관료들을 문책해야 할 텐데 누가 총대를 메겠느냐"고 말했다. 설마 공적자금 투입을 두려워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정부가 정공법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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