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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아잔타 동굴’타보 곰파로 가는 길

화이트보스 2009. 1. 16. 20:46

인도 스피티

‘히말라야의 아잔타 동굴’타보 곰파로 가는 길

히말라야 서쪽 스피티(Spiti) 지방은 인도 북동부 히마찰프라데시 주에 속한다. 18세기경까지 티벳 땅이던 이곳은 인종, 종교, 건축양식 등 티벳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중국 티벳 서쪽과 국경을 마주 하고 있어 1993년에야 개방되었다. 이곳에는 천 년이 넘는 오래된 티벳 사원들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이 히말라야 골짜기를 찾는다.


▲ 히말라야의 아잔타로 불리는 타보 곰파. 흙으로 지은 곰파 안에는 천 년이 넘은 벽화와 불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라다크 민박집 할아버지가 히말라야 골짜기에 있는 스피티(Spiti)라는 곳으로 순례여행을 다녀왔다. 팔순이 넘은 연세에 그 먼 길을 무사히 다녀온 걸 보면 종교의 힘은 대단하다. 그는 천 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스피티 사원에서 먼저 간 아내를 위해 기도했노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그곳을 이번 여행의 마지막 대상지로 잡았다.
 


지프뒷자리 얻어타고 스피티 중심지 카자로
새벽 4시, 마날리행 버스에 올랐다. 어제 나와 함께 버스표를 예매한 노인이 눈인사를 한다. 그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늙은 아내와 함께 내 옆자리에 앉았다. 쌀쌀한 새벽 공기에 아내가 추울까봐 큰 담요까지 준비해 왔다. 버스는 인더스 강과도 헤어지고 풀포기 하나 없는 막막한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하늘에 닿을 것 같던 고갯마루 타그랑라(5,360m)에는 한여름인데도 눈발이 날렸다.


고개를 넘자 지그재그로 난 내리막이 가파르게 펼쳐졌다. “트럭이 굴렀다”며 누군가가 소리를 쳤다. 길섶으로 많은 트럭들이 서 있고, 운전수들이 차에서 내려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버스도 갈 길을 멈추고 길섶에 섰다. 까마득한 벼랑 아래에 트럭은 고철덩어리로 해체되어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버스 기사가 목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고개를 넘어서자 길은 언제 가팔랐더냐는 듯 완만한 고원 평원지대로 접어들었다. 버스 안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고산병으로 고생하던 노파도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 노인은 잠이 든 아내를 무릎에 눕히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가로지르는 15시간의 버스 여행 끝에 라호르의 주도인 킬롱에서 버스는 하룻밤 쉬어간다. 내가 들고 간 가이드북에는 킬롱에서 스피티로 들어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정보였다.


▲ (왼쪽부터)스피티의 여자. / 타보 마을. 축제장에 가기 위해 치장하는 모녀. / 단카르 곰파의 어린 라마승.

다음날 다시 그 버스를 타고 그람푸(Gramphu)라는 삼거리에서 나 혼자 버스를 내렸다. 이틀 동안 함께 타고온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버스 조수는 이곳에서 스피티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나를 내려준 버스는 로탕패스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삼거리에는 움막으로 지은 간이음식점 두 곳이 축사처럼 길옆에 을씨년스럽게 웅크리고 있다. 저 만큼 버스 한 대가 뿌연 흙먼지를 뿌리며 계곡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저 버스를 타야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카자에 가십니까?”


▲ (좌)타보 곰파 축제장.(우) 새 불상 속에 경전과 보석 등을 넣고 있다.

길가에 선 지프에서 한 사내가 내려 내게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턱으로 저만큼 가고 있는 버스를 가리켰다. 그는 지프 뒷자리라도 괜찮다면 함께 타고 가자고 했다. 스피티에 산다는 사내 일행들은 다섯 명이나 되었다. 지프 뒷좌석에 실려 있던 짐들이 지프 지붕으로 올라가고 대신 그 자리가 내 차지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가는 것처럼 나는 지프 짐칸에 실려졌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골짜기를 향해 차는 끝없이 들어갔다. 사방 어디에도 마을이나 사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입안이 서걱거려오는 메마른 풍경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 단카르 곰파. 허물어져 가는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곰파는 천 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곰파다.

이따금씩 수십 마리의 염소와 양떼들이 지프를 포위하곤 했다. 이렇게 먼 길을 가다보면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할까 조바심할 필요도 없다. 그저 바퀴 굴러 가는대로 구름 흘러가는대로 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게 될 것이다.


쿰줌패스(Kunzum La·4,551m)라는 높은 고개를 넘자 스피티 밸리가 펼쳐졌다. 지프에 탄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이 가까워지자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7시간을 달려 스피티의 중심도시 카자에 도착했다. 


키 곰파와 꼽추 여승과 새 불상
지은 지 천 년이 넘었다는 키 곰파는 카자에서 약 14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해발 4,000m가 넘는 이곳은 여름인데도 추웠다. 팔을 드러내놓고 다니던 라마승들이 “아추추!”하며 두르고 다니던 숄로 팔을 감싼다. 곰파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고 라마승들은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키 곰파에서 바라보이는 풍경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성을 자아낸다. 스피티 강이 만들어낸 강변 단애에는 수많은 보살상들이 입시해 있고, 앞산은 구름을 기도수건인 카타처럼 목에 두르고 부처가 되어 앉아 있다. 키 곰파 부처들이 모두 밖에 나와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천혜의 성소다.

곰파에 방 하나 잡아두고 산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에서 올려다본 곰파는 하나의 산이었다. 마을은 보리 추수와 건초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지붕 옥상에는 건초들이 쌓여가고, 완두콩 넝쿨들은 말려서 옥상에다 쌓아두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 곰파로 올라가기에는 이미 글렀다. 마을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니 온 몸이 떨려왔다. 한 꼽추 여자가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보온 주전자를 들고와 차를 따라 주었다. 그녀는 여승이었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자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꼽추 여자는 만약 버스가 오지 않으면 이곳에서 자고 밝은 날 올라가라고 했다. 버스 불빛이 산굽이를 돌아 비추자 꼽추 여자가 더 좋아하였다. 키 곰파 버스정류장에서는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두 라마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에 불이 지펴지고 우리는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 키 곰파에서 내려다보이는 스피티 밸리.

새 불상 속에 들어갈 경문인 만트라를 만드느라 조용하던 곰파가 바빠졌다. 경문이 인쇄된 종이를 둥글게 말아 노란 천으로 하나 하나 쌌다. 경문마다 크기가 달라 작업은 복잡했다. 라마승들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며 책을 보면서 만들어 갔다. 몇 십 명의 라마승들이 꼬박 사흘 동안 만들었다.


새 불상을 위한 성대한 의식이 열렸다. 주방에서는 만두를 빚었고, 평소에는 얼굴도 안 보이던 라마승들도 참석했다. 라마승 툽텐과 체왕이 불상 안에 넣을 보석을 구해왔다. 3개의 불상이 얼굴을 천으로 가린 채 거꾸로 세워졌다.


 맨 먼저 진주와 하늘빛 보석을 넣고, 경문이 적힌 만트라를 차곡차곡 채워 나갔다. 사이사이 방부제를 섞은 향 가루로 덮었다. 라마승들이 반지 같은 귀중품들을 앞다투어 넣었다. 알곡식들이 뿌려지고 불상은 봉인되었다. 2008년 여름 키 곰파의 타임캡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완성된 불상은 총카파 상이었다.


▲ (좌)단카르 곰파. (우)축제에서 티벳 민속춤을 추는 스피티 남자들.

“총카파여, 나는 당신의 속을 훤히 알고 있답니다.”
노란 고깔모자를 쓴 총카파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스피티의 중심도시인 카자에서 축제가 열렸다. 버스들은 인근 마을을 돌며 꾸역꾸역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방금 들어온 버스에는 지붕에만도 자그마치 서른 명도 넘게 타고 있었다. 차 한 대 간신히 지나다닐 좁은 길은 인근 마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을들을 돌며 장사하던 방물장수들도 길에다 전을 벌였다. 멀리 마날리에서까지 온갖 잡화상들이 몰려들었다.


히말라야 산맥 너머 인도 평원에서 온 부부는 어른 팔뚝만한 구렁이를 몸에 두르고 다니며 박시시를 요구했다. 고산지대의 강렬한 햇빛에 구렁이의 비늘이 번쩍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징그러운 동물을 보고 아낙들은 고개를 돌렸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과 사내들은 신기해하며 만져보았다. 축제에 가장 신난 사람은 아이들이다. 한손에는 풍선이, 또 다른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렸다.


▲ 천 년의 역사를 지닌 키 곰파.

깊은 골짜기 사람 귀한 곳에서 내려온 이들에게는 사람 구경이 가장 큰 구경거리인 것 같았다. 붉은 옷을 입은 어린 여승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옷 파는 난전을 기웃거렸다. 비록 수행자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알록달록한 속옷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했다.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수군거렸다.


키 곰파 젊은 라마승들이 곰파의 트랙터를 몰고 축제장으로 떠났다. 그 중 몇 명은 승복을 벗고 청바지 차림으로 합세했다. 
 


카일라스로 가는 지름길 통로였던 타보
타보 곰파는 스피티 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흙으로 지은 타보 곰파에는 천 년 이 다 된 아름다운 벽화들과 화려한 불상들이 남아 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조한 이곳 기후 덕에 벽화와 불상들은 시간을 멈춘 채 그대로였다.


▲ 스피티 가는 길.

곰파 중앙 법당 서쪽 벽은 순례자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 벽화들은 1046년에 그려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천 년 전 순례자들 틈에 끼어 앉아 나도 순례자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천 년 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었다. 


타보 곰파에서 축제가 열렸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민속 의상을 입고 손에는 성수 주전자와 꽃을 들고 곰파로 몰려왔다. 카자에서 노점상을 하던 카르마도 어머니와 함께 좌판을 이곳으로 옮겼다. 그의 어머니는 어릴 적 티벳 시가체에서 망명길에 올랐다고 했다.


카자 버스정류장 입구에서 완구 몇 가지를 벌려놓고 팔던 툽텐도 보따리를 싸들고 왔다. 그도 티벳에서 망명해 온 사람이다. 기후와 풍습이 고향 티벳과 비슷해 많은 망명자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수틀레지 강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티벳 서쪽 성산 카일라스가 나온다. 한 때는 많은 순례자들과 상인들이 드나들었을 그 길은 막혀 버린 지 오래다.


▲ (좌)타보 곰파의 벽화. (우)축제장에서 라마승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엎드려 있는 순례자들.

이곳 사람들의 민속무용이 펼쳐졌다. 스피티 지방 농요에 따라 아낙들의 춤이 시작되었다. 농삿일하던 투박한 손으로 춤사위를 만들어가려하니 거칠고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수줍어하며 춤추는 그 순박한 모습이 어떤 세련된 공연보다도 가슴에 와닿았다. 여자들의 춤이 끝나자 이번에는 남자들의 춤이 시작되었다. 여덟 명의 남자들이 진양조 가락으로 한없이 느리게 춤을 추었다. 엇박자의 북소리까지 우리네 학춤을 연상시켰다. 저 춤사위처럼 이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축제가 끝난 후 다람살라에서 온 린포체가 주재하는 큰 기도회가 열렸다. 티벳에서 린포체란 이미 깨달았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환생불을 의미한다. 그들은 곧 신의 중재자인 것이다.


▲ (좌)핀 밸리에서 소와 말을 이용해 타작하고 있다.(우)스피티 가는 길.

마을 사람들은 린포체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마을 끝까지 줄을 섰다. 수많은 동네 개들도 축복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연단 좌우로는 라마승들이 자리 잡았고 앞줄에는 노인들이 앉았다. 그들은 어쩌면 생애 마지막일지 모르는 린포체의 법문을 듣기 위해 온 귀를 열어두었다.


이곳에 모인 여러린포체 순례자들은 린포체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런 느낌을 축복이라고 하는 것인가.


 / 글·사진 이해선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