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사인 제도 없애면 기름값 20% 낮출 수 있다”
조(兆) 단위 이익 내는 정유사 영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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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류세 10% 인하, 고유가와 환율 상승에 효과 반감 ● 주유소협회, 오피넷 도입에 “마른걸레 짜기” 반발 ● 복수 폴 제도 유명무실해진 속사정은? ● 첨가제, 자사 식별제만 넣고 타사 제품 섞어 파는 정유사들 ● 복수 폴 도입, 수입사 시장점유율 높아지자 정유사 이익 급감 ● 유류업계 “공급자(정유사) 경쟁시켜야 기름값 낮출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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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오피넷은 유류마진이 적은 소매업자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며 “연간 수조원대의 이익을 내는 공급자(정유사)들의 경쟁을 통해 유가를 낮추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부연했다. 특히 기름값을 실질적으로 인하하려면 무엇보다 유통구조를 왜곡하고 있는 주유소 상표 표시(주유소 앞에 세워진 입간판을 뜻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폴사인(Pole Sign)’이라고 한다) 고시제도 폐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사인 제도는 석유제품 판매에 있어 부당한 표시·광고행위를 방지하고 소비자의 브랜드 선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고시로 1992년에 도입됐다. 주유소 입구에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이라고 커다랗게 씌어 있는 입간판은 주유소와 정유사 간 폴사인 계약을 통해 세워진 것들이다. 폴사인 제도는 석유류 제품의 브랜드를 믿고 구매하는 소비자의 제품 선택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양질의 석유 제품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정유사와 주유소를 수직관계로 만들어 정유사가 시장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치 주유소가 정유사의 계열사처럼 돼버렸다는 것이다. 주유소업계는 고시제도 탓에 주유소가 자유롭게 거래처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업활동마저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유소협회 한 간부는 “(정유사와) 한번 계약을 맺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며 “노예계약도 그런 노예계약이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A주유소가 B정유사와 폴사인 계약을 체결했다면, A주유소는 B정유사 이외의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지 못한다. 독점 공급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폴사인 계약에 묶인 주유소는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공급가격에 기름을 납품받을 수밖에 없다.
수직 계열화의 폐단 단수 폴사인 체제에서 정유사가 공급가격으로 횡포를 부리는 폐단이 발생하자 정부는 2001년 복수 폴사인 제도를 도입했다. 이로써 한 주유소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제도 도입에 발맞춰 복수 폴을 등록한 주유소 가운데 상당수는 정유사의 압력에 시달렸다. 올해로 제도 시행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전국 1만2000여 개 주유소 중 복수 폴을 사용하는 주유소는 3%대에 지나지 않는다. 주유소협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6월 기준으로 209개이던 복수상표 등록 주유소는 1년 반 뒤인 2005년 12월 171개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복수 폴을 등록했더라도 서로 다른 두 정유사를 동시에 취급하는 주유소는 전국적으로 한두 곳에 지나지 않았다. 경쟁관계에 있는 정유사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결국 복수 상표를 등록한 주유소는 대부분 특정 정유사 한 곳과 무상표로 운영되고 있다. 서로 다른 정유사로부터 값싼 기름을 공급받을 수 있어 주유소에 유리할 것이라는 복수 폴사인제가 이처럼 활성화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삼호주유소 조익구 대표의 실패 사례는 복수 상표 표시 도입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지 보여준다. 2001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조 대표는 그해 9월 강남구청에 복수상표 변경 등록을 했다. 그간 SK 상표 하나만 사용하다가 복수 폴을 허용한 석유사업법시행령에 따라 SK와 무상표의 복수 폴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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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SK측에 “7년 동안 SK글로벌(현 SK에너지)에서만 유류를 공급받아 판매해왔지만 지속적인 적자 운영이 불가피했다”며 복수 폴 등록 배경을 설명했다. SK 측이 자신이 운영하는 삼호주유소에 다른 SK주유소보다 유류 마진을 작게 해서 공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복수 상표를 등록하게 된 또 다른 이유였다. 조 대표는 무상표로 별도의 폴을 운영하면 SK 이외의 다른 정유사에서 시장에 값싸게 내놓는 기름을 사들여 적자폭을 줄이고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정유시설의 과잉투자로 정유사들이 매년 생산하는 기름은 내수 수요를 20% 이상 초과하고 있다. 석유협회와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집계한 ‘정유사 생산 대비 내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정유사들이 생산한 기름의 총량은 9억2310만2000배럴이고, 이 가운데 7억6195만4000배럴이 국내에서 소비됐다. 내수 대비 생산 비율은 121.1%. 1억6000만배럴이 초과 생산된 것이다.
사문화한 복수 폴사인 제도 잉여 생산된 기름 가운데 대부분은 수출 등으로 해소하지만, 일부 기름은 자사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지 않는 대리점이나 현물시장 등을 통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주유소가 복수 폴사인을 등록하면 계약을 맺은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 것 외에도 타사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삼호주유소가 복수 폴사인을 사용한 지 7개월쯤 뒤 SK 측에서는 “지속적인 타사 물량 사입으로 선의의 SK 고객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정상적인 거래관계 유지가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며 SK 폴사인과 로고 등의 철거를 통보했다. SK는 고객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조 대표는 복수 폴사인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했다. 결국 SK는 상표표시 계약을 해지하고 SK 이미지를 상징하는 시설물들을 철거해갔다. 복수상표 등록 이후 폴사인과 로고가 철거된 사례는 그밖에도 많다. 그나마 조 대표의 경우 ‘무채권 주유소’였기 때문에 더 이상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다. 무채권 주유소란 정유사에 채무가 없는 주유소를 말한다. 주유소 하나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토지 비용 외에도 막대한 시설투자비가 들기 때문에 주유소 설립자 대부분은 주유소를 설립하기 전에 정유사로부터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돈을 빌린다. 차입 당시 폴사인 계약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유사 차입금이 많은 주유소일수록 정유사에 약한 것은 자명한 일. 정유사들이 차입금을 일시에 회수해 가거나 기름 공급 자체를 줄임으로써 주유소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금천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정유사가 마음만 먹으면 주유소 하나쯤은 얼마든지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자체 상표로 영업하고 있는 김 사장은 “특정 정유사에 얽매여 있지 않으니까 속 편하다”며 “매일 정유사나 대리점 등에서 발표하는 기름값을 보고 가장 저렴한 것을 사다 판다”고 했다. 유가 선택권이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얘기다. 김 사장이 이처럼 무폴 주유소를 자신 있게 운영하는 것도 정유사에 빚진 게 없기 때문이다. |
“왜애꿎은 우리만 사지(死地)로 내모는지 모르겠다.”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오피넷) 시행(4월15일)을 며칠 앞두고 기자와 만난 주유소업계 관계자들은 하소연부터 늘어놨다. 한 인사는 “극단적으로 말해 주유소 상표 표시 제도(폴사인)만 폐지해도 기름값을 당장 20%는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폴사인 제도가 뭐기에 그 제도만 없애면 기름값을 20%나 낮출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오피넷이 소매업 간 경쟁을 촉발하기 위한 제도라면, 폴사인 제도를 폐지하면 공급사(정유사)들의 경쟁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연간 수조원씩 이익을 내는 정유사들은 놔두고 소매상에 불과한 우리(주유소)만 경쟁시켜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동석한 다른 관계자가 말을 받았다. “한번 계약하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폴사인 제도는 현대판 노예계약이나 다름없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인 지난 3월10일, 유류세를 10% 인하했다. 치솟는 기름값에 서민 고통이 가중된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였다. 그러나 국제 유가의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환율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유류세 인하 효과는 곧 상쇄됐다. 유류세 인하 당시 잠시 내린 기름값은 다시 치솟기 시작했고, 5월 들어 서울 시내 주유소 판매가격은 ℓ당 1800원을 넘어 19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1조2000억원의 세수 감소까지 감수하면서 단행한 유류세 인하 조치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류세 인하의 추억 정부는 유류세를 낮춘 데 이어 추가로 유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4월15일부터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 오피넷(www. opinet.co.kr)을 도입했다. 전국 주유소별 판매가격을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개함으로써 주유소 간 가격경쟁을 부추겨 유가를 낮추겠다는 취지에서다. 4월15일 오피넷 도입 첫날엔 한 푼이라도 기름값을 아끼려는 소비자들이 홈페이지에 한꺼번에 접속하면서 서버가 다운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피넷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제도 도입 초기의 열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유류 소비자가 오피넷을 통해 전국 모든 주유소 가격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값싼 주유소를 찾아가 기름을 넣으려면 더 값비싼 기름을 소비해야 한다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통구조 개선이 더 시급 더욱이 오피넷에 나타난 값싼 주유소에도 함정은 있다. 오피넷에 공개된 주유소의 기름값은 제휴 신용카드(이른바 보너스카드)로 결제했을 때의 주유금액이다. 제휴 신용카드 소지자가 아니면 ‘값싼 기름’을 넣지 못하는 것이다. 오피넷 도입을 계기로 무한경쟁체제로 내몰린 주유소 사장들의 불만은 갈수록 고조됐다. 한국주유소협회 함재덕 회장은 “마른걸레를 짜도 분수가 있지. 주유소간 가격인하 경쟁을 부추겨 기름값을 낮추겠다는 것은 적자에 허덕이는 주유소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라며 분개했다. 힘없는 소매업자인 자신들만 쥐어짠다는 볼멘소리다. 함 회장은 “기름 유통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주유소만 옥죄는 것은 유가 인하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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