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헬스케어

펴고 늘이고 붙이고 뼈 맞추는 신의 손들

화이트보스 2009. 1. 21. 16:42

펴고 늘이고 붙이고 뼈 맞추는 신의 손들













러 일리자로프 병원

팔다리 기형과 복합 골절 등을 치료하는 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러시아 쿠르간 시 일리자로프 병원의 의사가 다리뼈 치료를 받는 환자의 수술 부위를 첨단 의료 장비로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일리자로프 병원


《존 매케인(28) 씨는 선천적으로 왼쪽 다리가 짧아 장애 판정을 받은 영국인이다. 그는 올해 영국 런던의 한 클리닉에서 두 번이나 다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다리뼈와 피부에 감염 증세가 나타났다. 매케인 씨는 수소문 끝에 러시아 서시베리아 남쪽 쿠르간 시의 일리자로프 병원을 찾았다. 그는 “이곳의 수술비용이 런던의 절반 정도인 데다 재활치료까지 받을 수 있어 오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기형과 외상 등 난치병 전문 병원

매케인 씨가 일리자로프 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비용과 재활치료가 전부는 아니다. 이 병원은 이제는 학술용어가 된 일리자로프 치료법의 본산(本山)으로 뼈와 관련된 난치병에 핵심 연구 인력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의 바짐 마쿠신 합동병리실험실장은 “일리자로프 치료법이 세계 각국에서 보편화되면서 이곳은 신기술을 토대로 한 새 치료법 개발과 외상학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 연구개발센터는 외국 정형외과 의사들이 일리자로프 수술법을 익히는 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매케인 씨 같은 팔과 다리 기형뿐만 아니라 두골, 척추, 골반 기형과 외상 등 고도의 의료 기술이 필요한 환자까지 이 병원을 찾는 이유도 이런 선진 의술 때문이다.

특히 이 병원의 연구팀은 최근까지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던 두골 복원 수술법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또 팔다리의 동창(凍瘡)이나 염증으로 부패 상태에 이른 환자들도 이 병원이 개발한 혈액순환 촉진 수술로 사지를 절단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회복된다고 했다.

집단 진단 및 집중 치료 시스템은 이 병원의 또 다른 장점. 환자가 입원 수속을 마치면 진단 단계부터 18개 분야의 전문가가 환부를 진단한다. 외상학과 정형외과 의사들이 기본 의료진이고 방사선, 혈관학, 신경외과, 종양과 물리치료, 압력치료, 집중간호, 세균학, 면역학, 심리학 전문가들도 환자의 증세를 동시에 점검하면서 수술과 진료를 준비한다는 것.


이 병원의 기본 진료 분야는 선천성 사지 기형, 후천성 사지 변형, 복합골절, 만성골수염, 뇌혈류 장애, 사지 혈관질환 등이다. 키가 작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왜소증의 치료와 혈관 신경 근육의 미세수술, 얼굴과 가슴 성형수술도 이 병원이 최근에 도입한 분야다.



○ ‘일리자로프 링’의 탄생

일리자로프 치료법은 1979년 이탈리아 탐험가 카를로 마우리 씨가 이 병원에서 다리 수술을 받을 때까지 서방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골(정강이뼈) 골절상으로 18년 동안 목발을 사용하던 마우리 씨는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장애를 극복했다.


마우리 씨가 퇴원하고 나서 이탈리아 정형외과 의사들이 옛 소련으로 들어가 일리자로프 치료법을 익힌 뒤부터 일리자로프 병원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과 캐나다까지 이 수술법이 확산됐다.

소련에서는 이 치료법이 1951년 시작됐다. 당시 가브릴 일리자로프(1921∼1992)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각종 외상을 입은 부상자를 위한 수술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원통형 기구를 개발해 다리가 짧거나 기형인 동물의 다리뼈를 늘이는 데 성공했다. 또 이 기구를 이용해 뼈를 하루에 조금씩 늘이면 신경 혈관 근육뿐만 아니라 새로운 뼈 조직도 사람의 몸에서 생긴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전쟁이나 교통사고로 팔다리가 절단되거나 골수염 등으로 뼈가 없어진 많은 환자는 이 기구의 발견 이후 이식수술을 받지 않아도 뼈를 늘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이 기구는 한국에서 ‘일리자로프 링’으로 불리고 있다. 이 링은 부러진 뼈를 체외에서 고정하는 도구로 뼈를 늘일 때나 골절된 부위를 맞추거나 압박해 뼈를 붙일 때 사용된다.

일리자로프 박사가 1971년 쿠르간 시에 세워진 병원에 이 기구를 기증하고 20년간 개발한 치료법을 전수하면서 쿠르간의 병원은 일리자로프 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외국인 환자 이용 방법

외국인 환자들이 이 병원에 입원하려면 교통과 의사소통 불편, 복잡한 비자 수속을 거쳐야 한다. 쿠르간 시에는 국제공항이 없다. 외국인 환자는 모스크바 공항에서 쿠르간으로 가는 러시아 국내선을 갈아타야 한다.

이 병원 행정실에는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통역사가 일하고 있다. 그렇지만 의료진들은 외국 환자들이 구사하는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병원 행정실은 입원 30일 전부터 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를 준비한 뒤 병원에 연락해 도움을 받을 것을 권했다. 블라디미르 b초프 병원장은 “외국에서 환자들이 정말 고치기 힘든 병을 앓고 있다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우리 병원을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쿠르간=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35년 축적된 치료경험-자료… 합병증-후유증 거의 없어요”

블라디미르 솁초프 병원장



“합병증과 후유증 발생은 의사의 치료 경험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수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블라디미르 솁초프(사진) 일리자로프 병원장은 일리자로프 치료법의 안전성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일리자로프 병원 창설자인 가브릴 일리자로프 박사가 1992년 타계한 뒤부터 이 병원을 맡아왔다.

그는 일리자로프 치료법이 외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부작용과 치료 후유증을 우려하는 환자가 많다는 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병원이 35년간 축적한 임상 자료와 의사들의 풍부한 치료 경험으로 환자가 예상하는 합병증과 후유증이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병원의 우수성과 경쟁력은 1988년 12월 아르메니아 대지진 당시 자원봉사 진료에서 나타났다. 당시 다른 외국 정형외과 의료진이 치료한 팔 다리 뼈 외상환자의 사지 절단율이 15∼18%였던 반면 이 병원 의료진은 그 비율이 2%에 불과했다는 것.

솁초프 원장은 “지금도 뼈 상태가 악화돼 자기 나라에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거부당한 난치병 외국 환자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이 병원에 입원한 외국 환자는 30명이 넘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가장 수술하기 힘든 분야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척추 측만증과 골반의 복합골절”이라고 말했다. 척추와 골반은 사지와 달리 몸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일리자로프 링 고정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한때 키 키우는 방법으로 유행했던 사지 연장수술도 물어봤다. 이 병원은 정강이뼈에 금을 낸 다음 뼈를 자동으로 늘이는 컴퓨터 장비를 최근 개발했다.

“키가 작은 것이 일생의 결함이 된다면 외상이 없더라도 환자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 병원을 찾은 방문객 중 일본 여성과 중국 남성들이 특히 이런 증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왜소증에는 문화적 요인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는 환자들이 사지 연장수술을 받은 뒤 수술 부위가 감염되거나 관절이 잘 펴지지 않는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수술 전 신중한 선택을 당부했다.

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수술 다음 날부터 회복 훈련에 들어간다.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는 “완전 회복 때까지 재활 훈련과 충분한 무기질 섭취가 경험 많은 의사의 집중 치료나 첨단 치료법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쿠르간=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새로운 기부문화의 씨앗, 해피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