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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끝은 통한다 했다. 바다와 산. 대척점에 있는 이 둘이 조화를 이루면 상상도 못할 기경이 탄생한다. 카프리나 하롱베이 같은 먼 나라 예를 들 것도 없다. 성산 일출봉이나 울릉도 해벽도 세계적인 산해절경(山海絶景)으로 꼽을 만한 곳들이다. 이런 명승지가 아니라도, 산과 바다가 만나면 최소한 눈의 즐거움은 보장된다.
경관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세우느냐가 다를 뿐, 누구나 좋고 나쁨을 구분하며 세상을 본다. 당연히 인간이라면 멋지고 아름다운 경관에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다. 이때, 확실히 웅장한 규모는 감동의 울림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크기가 반드시 마음을 흔드는 척도가 된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작고 아기자기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광이 많기 때문이다.
- ▲ 돈대산에 오르면 액자 속에 갇힌 듯한 모습의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다. 동굴 속에서 본 관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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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남서쪽 바다는 다도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많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바다란 뜻이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이렇게 섬들로 갇힌 듯 열린 바다는 결코 흔치 않다. 우리의 남해안은 그리스의 에게해와 함께 대표적인 다도해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전남 해안은 우리나라 전체 섬의 절반이 훨씬 넘는 2,000개 가까운 섬들이 모여 있다. 섬의 밀집도 측면에서 볼 때도 대단한 수치라 할 수 있다.
많은 섬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거기에 높이와 규모까지 갖췄다면 더욱 환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노년기 지형의 산물인 다도해는 아무래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대신 부드럽고 편안한 선을 그리는 지형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일부 섬산 가운데 도드라지는 바위지대를 감춘 곳도 있다. 다도해 조망대로 입지가 뛰어난 곳들이다.
- ▲ (위)봉우리 꼭대기에 쌓아 둔 돌탑이 등산객들의 기분 전환을 돕는다.(아래)안개가 걷힌 바다를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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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면은 153개의 섬으로만 구성돼
전남 진도군 조도에도 이러한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산이 있다. 조도면 소재지가 있는 하조도의 돈대봉(230.8m) 능선이 바로 그곳. 나지막한 산이지만 바위지대인 능선길의 조망이 뛰어나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잠시 발품을 팔아 정상에 서면 바다에서 볼 수 없는 조도군도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조도면은 ‘조도군도’의 153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면 단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는 곳이다. 그 섬들의 중심에 조도가 모함처럼 버티고 있고 주변으로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형상이다. 이처럼 섬이 산재한 모습이 마치 ‘새떼’같다고 해서 조도군도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 ▲ 뾰족한 바위들이 연이어 솟아 있는 돈대봉 능선 동쪽 끝의 암릉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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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는 섬의 무리가 보여주는 독특한 풍광이 특징이다. 바위산에 올라 주변 섬의 경치를 내려다보는 맛이 보통 짜릿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섬으로 드나들며 섬 사이 놓인 호수 같은 바다를 건너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리로 연결된 상조도의 도리산 전망대와 하조도 동쪽 끝의 등대도 볼거리다. 색다른 운치를 즐기며 봄을 맞이하기에 안성맞춤인 섬이다. 진짜 다도해가 무엇인지 보고 싶다면 조도가 ‘강추’다.
조도로 가려면 본 섬인 진도를 거쳐야 한다. 진도 남단의 팽목항에서 조도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다. 잠시 섬 구경을 하며 바닷바람에 취해 있는 사이 창유리 어유포항 당도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 육중한 철갑의 선수(船首)를 밟고 부두로 내려섰다. 정면에 터미널과 민박집, 매점, 다도해국립공원 조도분소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차분하고 조용한 첫인상이 낯설다.
- ▲ 날카로운 암릉을 타고 있는 임지웅 군과 기자(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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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창유라고 불리는 어유포항은 면소재지가 위치한 하조도의 관문이다. 이곳을 통해 뭍이나 또 다른 여러 섬으로 뱃길이 연결된다. 조도면소재지는 항구에서 5분 거리인 섬 중앙의 창유리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사인 조도 전망대 돈대봉은 면사무소 뒤편에 솟아 있다.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험준한 산줄기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다. 그리 높지도 길지도 않은 산줄기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하루만 늦게 오셨어도 같이 갈 수 있었는데요.”
조도면사무소의 김월용 총무계장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하필 취재팀이 방문한 날 박헌섭 신임 면장의 취임식이 있어 짬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돈대봉 산길 조성에 앞장섰기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요 행사를 거르면서 동행을 권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자세한 코스를 알려주며 산행 시작 지점까지 안내할 직원을 붙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