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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은행' 키워주는 한나라당

화이트보스 2009. 3. 14. 11:22

'그림자 은행' 키워주는 한나라당
금산분리 완화 정책은 금융위기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마치 경제학 은사님의 낡은 이론이 환생한 듯
송희영 논설실장

그림자 은행(Shadow banking system)이라는 말이 전문가들 사이에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얼추 10년밖에 안 됐다. 예금을 대출해 착실하게 이윤을 남기는 정통 은행업이 아닌 비(非)은행권 금융업을 그렇게 불렀다. 예를 들어 인수·합병(M&A) 같은 돈벌이나 파생상품-헤지펀드-사모(私募)펀드로 대박을 터뜨리는 영업이 대표적이다. 세계 언론이 그림자 은행에 주목한 것은 최근 1년 반 사이다. 금융위기 발발 후 응달에서 독버섯처럼 퍼진 파생금융상품을 원흉으로 지목했다.

금융 회사들은 본업(本業)으로 떳떳하게 돈을 벌기보다는 감시가 허술한 파생상품을 개발, 한탕주의로 내달렸다. 씨티은행·AIG의 몰락에서 우리는 그림자 은행의 음험하고 파괴적인 얼굴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회사 CEO들은 국제결제은행(BIS비율) 같은 감시와 견제가 따르는 은행업·보험업으로는 수억달러씩의 연봉을 챙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CCTV 카메라가 없는 그늘에서 복면을 쓴 채 로또식 거래에 열중하다가 처참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가 그림자 은행의 참혹한 실패에서 뼈저리게 배운 교훈은 분명하다. 누군가 눈에 안 띄는 곳에서 횡재를 노린다면 감시용 서치라이트를 환하게 비춰야 하고, 본업을 잊은 기업에는 위험한 외도를 절제하도록 칸막이를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1주일 전 폴 볼커(Volcker)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은 "또 다른 금융위기를 피하려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증권업)을 분리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은행이 증권-보험-자산운용 회사를 줄줄이 거느리고 헤지펀드·사모펀드까지 운영하는 '묻지마 확장'에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발상이다.

돈벌이만 되면 웬만한 장벽은 허물어왔던 미국과 유럽의 금융업에서 프로펠러가 역회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금융업뿐만 아니다. 세계 최강의 제조업체들마저 금융에서 황금알을 즐기다가 혼쭐나고 있다.

GM의 붕괴 과정을 잘 살펴보자. '회사는 죽어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노조가 대형 몰락극(劇)에서 돋보이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동차 할부 금융을 공급하는 금융 계열사의 부실이 동반 자살을 재촉하고 있다. 판촉을 위해 키워왔던 금융회사가 거꾸로 판매를 위축시키는 역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최상의 성공 모델로 경영학자들의 칭송이 자자하던 GE도 똑같은 팔자다. 그룹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금융업에서 벌었던 것이 바로 몇 해 전이다.

그런 경영 다각화를 흠모하며 한국 경영인들이 그 유명한 크로튼 연수원에 비싼 수업료 내고 경쟁적으로 입소했었다. 하지만 지난 가을부터 GE는 제조업에 집중하기로 경영 노선을 수정했다. 어음(CP)이 부도에 몰려 중앙은행(FRB)의 구제금융을 받고 가까스로 살아난 후, 알짜사업으로 숭배해오던 금융업을 축소 중이다.

이런 흐름을 보면 청와대한나라당이 추진하는 금산(金産)분리 완화 정책은 금융위기 시대에 맞지 않는다. 경제학 은사님의 강의 노트 속에 있던 이론이 잘못된 시간에 울린 알람소리를 듣고 환생한 듯하다.

금산분리 완화 정책이란 한마디로 재벌과 대기업이 은행을 쉽게 소유하게끔 은행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오너 몇이서 손잡으면 거대 은행 장악에도 별 문제가 없게 된다. 법안은 우격다짐으로 상임위를 통과, 한나라당은 4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렇다. 론스타 같은 하찮은 펀드가 외환은행을 쥐고 있는 나라에서 재벌이라고 은행을 소유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 용으로 포장된 이 개혁 법안은 자칫 '개악(改惡) 법안'이 되거나 금융위기를 부를 '폭탄 법안'이 될 수 있다. 100년 장수한 세계적 기업들이 금융 쪽에 외도했다가 그룹이 통째로 추락하는 꼴을 보면서도 칼날 위로 올라서겠다는 것인가. 증권·보험·카드는 물론, 심지어 사모 펀드까지 가질 만한 금융업을 다 하는 재벌들이 은행까지 쥐고서 제멋대로 돈줄과 인사권을 휘저으려는 꼴이 배 아파서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 세계 금융의 틀이 온통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앞세워 칸막이(규제)를 없애려는 발상에도 노선 수정이 필요하게 됐다. 더 큰 비극을 막으려면 대기업과 은행 사이는 물론, 금융업 내부에도 칸막이를 낮출 게 아니라, 불꽃이 옆방에 튀지 않도록 방화(防火)벽을 높게 쌓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림자 은행의 담벼락에 인간의 탐욕을 견제할 감시 카메라를 더 달아야 할 때,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거꾸로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