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102동 702호

'100엔=1299원'… 돌아온 엔저(低)?강경희 기자 khkang@chosun.com 기자의

화이트보스 2009. 4. 7. 10:49

'100엔=1299원'… 돌아온 엔저(低)?

  • 강경희 기자

입력 : 2009.04.07 06:19

금융위기 불안감 완화되며 '안전자산' 엔화 탈출 행렬…
국내 수출기업 경쟁력 '비상' 일본 관광객 줄까 걱정도

6일 낮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 "엔화 환율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일본 관광객들한테 주는 시세는 원래 100엔당 1280원인데, 관광 가이드인 것 같으니 후하게 쳐서 1290원까지 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환전소 직원은 "개업한 지 한 달 됐는데, 요즘 엔화 환율이 떨어지는 바람에 한 달 전보다 일본인 환전 손님이 10~20%가량은 줄어들었다"고 했다.

한때 100엔당 1613원(2월 20일)까지 치솟았던 엔화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세로 돌아서 1300원 밑으로 내려갔다. 6일 현재 엔화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46.12원 폭락한 100엔당 1299.36원(오후 3시 도쿄외환시장 기준)에 거래됐다.

엔화가치, 5개월 만에 최저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5개월여 만의 최고치로 상승(엔화가치 하락)한 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한 외환딜러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 여다보고 있다. 이날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0.75엔까지 올랐다./로이터연합뉴스

다시 엔저시대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초강세를 보이던 엔화 가치가 지난 10월 하순 이후 5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며 '달러당 100엔'의 엔저(低)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엔화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한 통화로 여겨지면서 초강세를 보여왔다. 지난 1월 22일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당 88.04엔까지 하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기 침체가 극심하고, 글로벌 경기침체의 바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 3일(현지시각) 뉴욕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0엔을 뚫고 올라갔다. 이어 6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오후 3시 현재 달러당 100.75엔에 거래됐다. 달러당 100엔을 넘기는 작년 10월21일(100.14엔) 이후 5개월 여만이다.

엔화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5개월 만에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 3일 뉴욕시장에서 유로당 135.23엔이었고, 6일 도쿄시장에서 오후 4시 10분 현재 137.05엔으로 더 올랐다.

엔화의 약세 기조현상에 대해 아미쿠라 히데키 일본 노무라증권 외환전문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완화되면서 안전자산 엔화를 선택하는 대신,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겠다는 성향이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관광객 줄어드나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엔화 환율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서울 명동 일대의 상가나 백화점, 면세점 등에서는 '엔고 특수'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돈다. 롯데면세점 황진경 지배인은 "올 1~2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매출이 200% 넘게 급신장했는데, 엔화 환율이 하락하면서 매출 신장세도 다소 주춤해져 3월에는 200%를 약간 밑돈다"고 말했다. 명동의 한 상인은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오는 4월 말~5월 초 황금 연휴 기간에 일본인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엔고(高)가 엔저(低)로 방향을 틀면서 자동차·반도체 등 환율 덕에 반사이익을 누려온 국내 수출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200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의 기술 격차가 줄고 주요 수출품목 가운데 중복되는 부분이 커졌다"면서 "앞으로 엔저가 추세화되는 경우 한국 수출산업의 매출과 채산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그동안 엔고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일본의 수출 기업들은 다시 호기를 맞을 전망이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은 엔화가 달러당 90엔대 초반으로 내려가면서 타격을 입고 빠른 시간 내에 원가 절감, 인력 감축 등으로 체질을 개선했다"면서 "엔화 약세가 정착되면 일본 기업들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환율 전망은 엇갈려

엔저 현상이 더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국내외 금융기관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메릴린치는 지난 3월 말 내놓은 예측에서 "3개월 후 엔화 환율이 달러당 100엔, 6개월 후 108엔, 12개월 후 115엔까지 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크레딧 스위스는 3개월 후 98엔, 12개월 후 90엔으로 엔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지속되려면 엔 캐리 트레이드 현상이 다시 나타나야 하는데,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엔저가 지속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의 엔화를 일본에서 빌려 해외의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최대 1조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던 이 자금이 작년 10월 이후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엔화 강세를 부추겼다.

반면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의 내수가 위축되는 데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면서 "엔화가 달러와 같은 수준의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엔화에 대한 선호가 그다지 크지 않아 당분간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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