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高 建 前,國務總理가 서울市長 때 쓴글
"푸른산 볼 때면 朴正熙 大統領 생각난다"
어떻게 해서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서운 집념이
절절하게 다가오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산이 푸르른 계절이 되었다.
때문이다. 한참 일에 열정을 불태우던 젊은 副理事官 시절, 砂防事業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東大本山은 月城郡 外東面과 蔚州郡 農所面 사이에 있는 큰 산이다. 제일 먼저 눈에 잡힌다. 지금이야 녹화가 잘되어 푸르르지만 당시에는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이 민둥산이 울창한 일본의 산을 내려다보며 현장감독이 되어야 했다. 현지에 가보니 동대본산은 정말 악산이었다.
자문을 구했더니 一般 砂防方式(일반 사방방식)으로는 안되고 經濟動向報告會(경제동향 보고회)에 참석해 그 내용을 직접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녹화교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직접 보고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다. 총리, 장관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원칙을 말씀드렸다. 계신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휴- 하고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느껴지는 말씀들이었다.
꺾어 짚고 다니다가 무심코 거꾸로 꽂아놓고 歸隊(귀대)하셨던 모양이다.
지팡이에서 싹이 돋았더란다.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을 했다 하시며 파안대소를 하셨다. 그때 웃으시는 대통령 입안에 덧니를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새마을 國務會議(국무회의)가 열렸는데 이때 유일한 안건인 새마을사업 추진상황을 主務局長(주무국장)으로서 보고 드리곤 했었다.
결연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바로 옆에서 대통령을 모셨다. 이 시절에는 대통령과 首席秘書官(수석비서관)들과의 저녁 회식 자리가 잦았다.
막걸리 아니면 양주였다. 막걸리도 특별한 것이 아니고 고양군에서 만든 일반 막걸리였고, 양주는 시바스 리갈이 고작이었다. 반주를 드시면서 옛 이야기도 자주하셨다. 그러다가 가끔 흥이 나시면 '비탁' 칵테일을 만들어 돌리시곤 했다. 칵테일이다. 비탁 칵테일을 '調製(조제)'하시는 대통령에게 옆에 앉았던 내가 “조제는 제가 하지요”하니까 “어이, 이 사람,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당신은 配合比率을 모르지 않나 ”하시면서 젓갈로 비탁을 휘휘 저으시고는 우리들에게 비탁 칵테일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마음놓고 마실 형편은 못되었다 한다.
그래서 추렴한 돈으로 비루(맥주) 두어 병을 사 탁주 한 말에 부어 함께 돌려 마시곤 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지주 집에서 모내기를 할 때면 온 동네사람이 모두가 품앗이를 했다 한다.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호박 잎에 얹혀진 ‘자반고등어’ 한 토막이 그렇게 맛있더라는 것이다. 시절에 대한 한과 어떻게 해서든 가난을 극복하려는 무서운 집념이 상대적으로 안녕하게 성장한 나에게도 절절하게 다가오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나도 비탁 칵테일을 몇번 만들어 보았다. 살아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살게 된 탓에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배합비율의 비결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인지 알수 없다. 박정희 前 대통령을 회상하면서 쓴 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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