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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고학 전문작가 웨난 등이 쓴 '황제의 무덤을 훔쳐라'(돌베개 펴냄)는 선진(先秦)시대부터 청나라 말기~중화민국 초기까지 중국의 도굴 역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책이다.
여러 이야기 중 가장 극적인 것은 '도굴장군' 손전영(孫殿英)의 서태후 무덤 도굴사건이다.
군벌 출신으로 1928년 국민혁명군에 귀순했던 손전영은 군량 모을 자금을 마련하느라 고심하던 중 도적들이 청나라 동릉에서 금은보화를 훔쳐 돈을 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동릉을 도굴하기로 한다.
부하들을 시켜 서태후의 묘를 도굴하던 그는 18알 진주 팔찌와 황금 팔찌ㆍ쟁반, 황금상감주전자 등 보물이 쏟아져 나오자 직접 도굴현장으로 내려간다.
이미 서태후의 관은 열린 상태였고 관 옆에는 관을 열 때 시신을 보고 기절한 병사가 쓰러져 있었다. 이에 손전영은 욕을 내뱉으며 쓰러진 병사의 배를 걷어찼고 그때 병사의 몸이 서태후의 시체 위로 툭 하고 쓰러지면서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
"막대기처럼 굳은 시체가 충격에 반동하면서 강한 쪽빛이 자희(서태후)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빛은 서북쪽 귀퉁이에서 동남쪽 귀퉁이의 벽까지 닿고 거의 30걸음밖에 있는 병사들의 머리에까지 비쳤다"
서태후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일명 '야명주'의 빛이었다. 더위를 막아 몸을 서늘하게 해주고 죽은 사람들에게 물리면 시체가 천 년이 지나도 금방 묻은 것처럼 썩지 않는다고 알려진 구슬이었다.
손전영은 부하에게 구슬을 입에서 꺼낼 것을 지시했지만, 막상 서태후의 입속으로 손가락을 넣자 구슬은 시체의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다.
목구멍 깊이까지 손가락을 넣어 한참을 더듬었으나 구슬은 잡힐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부하는 서태후의 입속으로 칼을 쑤셔넣고 좌우로 무자비하게 입을 갈라 구슬을 꺼냈다.
서태후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손전영은 병사들에게 20분간 나머지 보물을 주워 가질 수 있는 시간을 줬고 병사들은 자희를 감쌌던 용포는 물론 저고리와 바지, 신발, 버선까지 모조리 벗겼다.
결국, 자희의 몸에는 붉은색 속바지와 발끝에 씌운 양말밖에 남지 않았다. 어떤 병사는 벗긴 저고리와 바지에서 보석을 뜯었고 어떤 병사는 남은 야명주가 있을까 싶어 자희의 알몸을 위아래로 흔들어보기도 하고 머리카락과 입, 음부에까지 손을 넣고 훑기까지 했다.
사흘간에 걸친 도굴 끝에 손전영은 대형 손수레 30대 분량의 보물을 획득했지만, 인류 문화사에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겼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퇴위한 황제 부의와 청 왕조의 유신들은 비통해했고 이틀간의 '어전 회의' 끝에 도굴자 수배에 나섰다. 하지만, 손전영은 국민당 정부 요원들에게 전방위로 뇌물을 바쳤고 결국 일은 흐지부지 없었던 일이 됐다.
이밖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을 비롯해 한나라 무제, 조조, 제갈량, 당 태종 이세민, 칭기즈칸을 비롯한 원나라 황제들의 무덤에 얽힌 이야기, 같은 황제이면서 황릉을 도굴했던 송나라의 유예, 명당에 묻히려고 다른 사람들의 무덤을 밀어버린 명 태조 주원장 등의 이야기 등이 흥미롭다.
정광훈 옮김. 392쪽. 1만4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