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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칼럼] MB의 변화인가, 변절인가김대중·고문

화이트보스 2009. 5. 25. 09:53

[김대중칼럼] MB의 변화인가, 변절인가

  • 김대중·고문

입력 : 2009.05.24 22:10 / 수정 : 2009.05.24 23:11그는 이래도 당하고 저래도 당할 처지다 어차피 그렇다면
'원칙을 지킨 패자(敗者)'로 남는것이 유익할 것이다

대북문제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의 키워드는 '실용'이며 이 실용은 상호주의에 바탕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할 준비가 돼있다"면서도 '도와주고도 고맙다는 소리 못 듣는 지원'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2008년 9월 평통자문위원 간담회).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1년의 조정기를 보내면서 일관성과 원칙을 견지해왔다"(통일부 신년업무보고)고 자부해온 이 대통령이 오는 8월 15일 경축사에서 그 원칙을 깨고 일방적 대북지원을 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일부 논객들은 이 대통령에게 '통 큰 결단'을 주문했고 여기저기서 대북지원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이미 전시작전권 전환의 재확인, PSI(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 참여의 보류, 유모씨 억류사태와 상관없는 개성공단 유지 등을 통해 '통 큰 결단'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기미는 이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공식방문에 수행했던 작가 황석영씨의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식수행의 명분조차 불분명했던 황씨는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대화는 내년 상반기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현 정부로서는 해결하기 어렵다"며 남북관계 개선의 운을 뗐고 "이 대통령은 중도적 생각을 뚜렷이 갖고 있다"고 MB의 대변인 역할까지 했다. 황씨는 자신의 지론인 '몽골+α 코리아'가 "느슨한 연방제의 토대가 될 수 있지 않나 해서 작년 가을부터 접근이 이루어져서 이 대통령과 몇차례 뜻도 나누고 그러면서 '한번 해봅시다' 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도 했다. 아마도 황씨의 발언은 이 대통령이 밝힐 '통 큰' 구상의 예고편인 듯싶다.

이 대통령의 남북 대화 원칙에 이의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북한 김정일 정권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한발 더 나아가 금강산에서 우리 민간인을 사살하고 핵 로켓 발사, 개성공단 폐쇄 위협 및 유씨 억류 등으로 MB정권을 다면적으로 협박해 왔는데도 이 대통령이 이제 스스로 원칙과 일관성을 벗어 던지고 변화 아닌 변질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문제에서도 변질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는 대선 때 "북핵 위협이 있는 한, 작전권 전환문제는 신축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자신이 당선되면 미측과 재협상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공약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당선 후 한·미정상회담(2008.8.6)에서 한·미 연합사 해체를 기정사실화했고 오바마와의 정상회담을 앞둔 이 시점까지 아무런 구체적 언급이 없는 상태다.

PSI 참여문제와 관련해서는 그의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보수·우파진영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청와대가 공식으로 확인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하필이면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에 그것을 발표해서 북한을 자극할 일이 무엇이냐"고 관계자를 나무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공식 언급은 "PSI 참여의 원칙을 지키되 상황에 대처할 때는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SI 참여 문제는 그 이후 오리무중 상태에 있다.

아마도 이 대통령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소는 미국인 것 같다. 북한은 경색된 미·북 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의 석방에 대한 답례(?)로 미국의 고위급 인사의 대북파견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사의 급(級)은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또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인 모양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을 '통제'하고 6자회담의 틀을 복원하기 위해 북한 요구에 응할 것이고, 그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한국의 MB정권이 대북관계를 원활하게 풀어줄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미국과 북한이 거래를 트면 '원칙'에 갇혀 있는 MB로서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희생타로 밀려나는 처지가 될 것이고 MB는 그것을 견디어낼 자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고리를 풀거나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선제적 제스처를 쓴다는 것이 MB의 변질 또는 변절(?)의 변(辯)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지금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걸려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런다고 김정일 정권이 MB의 대북 제스처를 받아줄 것인가다. 이렇게 되면 이번 남북 포커 게임에서 승자는 김정일이 되는 것이고 협박과 전략에서 승리한 북한 정권은 더욱더 기고만장해서 MB를 무릎 꿇리려 할 것이다. 뻔하다. 이 대통령은 이래도 당하고 저래도 당할 처지다. 어차피 그럴 바에야 이 대통령은 '원칙을 지킨 패자'로 남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할 것이다. 더더군다나 이 대통령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MB정권은 보수·우파의 지지로 탄생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약속한 것과 다른 길로 가려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앞으로 남은 기간 보수·우파의 신뢰를 잃을 것이며 이미 분열 여당, 강성 야당에 '노무현 후유증'까지 안고 있는 이 대통령의 앞날은 험난하기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