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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5월.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 등정에 나선 고상돈에게 1년 전 결혼한 아내 이희수는 쪽지를 건넸다. “돌아오시면 좋은 선물이 있을 거예요.” 남편은 무슨 뜻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아내는 임신 3개월이었다(현재 그의 딸은 이화여대 석사를 마쳤고 이 여사는 대전에서 패션사업을 한다).
2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려 떠난 매킨리 등반대. 공교롭게도 다른 한국팀 2팀이 따라붙고 있어 마음도 급했다. 고상돈은 마침내 6194m 고지를 정복했다. 하지만 내려오는 게 문제였다. 대원 3명은 너무 지쳐 있었다. 해발 6000m 지점에서 빙벽을 타다가 한 사람이 실족했고, 몸을 로프로 연결했던 3명은 와르르 추락했다. 고상돈과 이일교는 숨지고, 박훈규만 살아남았다.
기다리던 아내는 6월 1일자 신문에서 남편 소식을 알게 됐다. 며칠 뒤 007가방 하나를 받았다. 남편의 카메라도 일기장도 사라진 빈 가방이었다. 고씨의 유해는 80년 10월 고향인 제주 한라산 기슭에 안장됐다.
얼마 전 박영석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에 성공하는 쾌거를 일구었다. 산은 선배들의 어깨를 딛고 오른다고 했던가. 77년 고상돈은 후배들의 가슴에 ‘도전의 길’을 냈다. 380㎞를 21일에 걸쳐 걸어가고 98개의 사다리를 놔서 빙벽을 오르며 뚫은 그 첫길.
이상국(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