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靑), 이번 한·미 회담선 핵주권 논의 안할 것…
북(北) 핵실험과 연계하면 국제사회 오해 부를 것"
12일 여당 정책위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한미 정부 양측을 향해 '평화적 핵 주권 회복론'을 공개 요구하고 나선 것은 다분히 예고편적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에 '당장 이번 정상회담서 이 문제를 제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기보다는 미국 정부에 '향후 미국이 북핵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평화적 핵 주권론이 계속 굴러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만에 하나 미국이 북한을 핵 국가로 용인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경우에 대비한 견제카드로 평화적 핵 주권론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여당이 내비쳤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 능력 평가와 관련해, '이미 핵 국가 아니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에서 쏘아 올린 핵 주기 완성론은 미국이 북핵을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대한민국이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점을 넌지시 알리려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장 정상회담에 나서야 하는 청와대는 여당에서 불거진 평화적 핵 주권론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핵연료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 문제를 거론해달라고 여당이 요구한 데 대해 청와대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 테이블에는 실무자들끼리 미리 면밀하게 협의된 안건만 올라가게 돼 있다"면서 "갑자기 특정 의제를 꺼내는 것은 외교 관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 ▲ 16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당에서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 우리도 ‘핵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식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12일 서해 연평도 레이더 기지에서 초병들이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경계를 서고 있다./국회 사진기자단
청와대는 무엇보다 핵 주기 완성론을 북한의 핵실험과 연계시켜 제기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 '우리도 핵연료 재처리를 해야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핵연료 재처리를 하려는 의도를 국제적으로 의심받게 함으로써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차원에서 별도로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외교안보 자문단의 일원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핵 주기 완성론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핵보유 국가로 인정하고 한국도 거기에 동참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면서 "평화적 핵 주기 완성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해나가야 하지만 타이밍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런 청와대의 기류에 비춰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핵 주기 완성론'이 메뉴로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며, 여당도 그런 가능성을 믿고 건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몇 여당 의원들 입에서 거론되던 '핵 주기 완성론'이 여당의 총의(總意) 형식으로 제기된 만큼 이 문제는 한반도 안보 쟁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협상이 5년여에 걸쳐 이뤄질 것이므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진행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도 "핵 주기 완성론은 원자력 발전이나 여러 산업적 측면에서 필요한 시점이 됐기 때문에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정부는 당분간은 '핵 주권론은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문제제기'라며 경계하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미 핵우산의 보호를 받으며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우리 외교정책의 대전제를 함부로 허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북=핵보유국'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도래할 경우 정부가 계속 이런 입장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