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헬스케어

암도 고치고 ‘벌컥 성격’도 고쳤죠

화이트보스 2009. 6. 16. 19:50

암도 고치고 ‘벌컥 성격’도 고쳤죠
갑상샘암 이겨낸 최경수씨
10년 전 셋방살이 현실에 ‘화’내는 일 잦아
‘이유없이 걸렸다’ 원망보다 오히려 감사
하니Only 권복기 기자 곽윤섭 기자
» 갑상샘암을 이겨낸 최경수씨는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의사는 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병 특히 통증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살아 있다는 것이고 또 병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긋난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큰 병을 앓고 난 뒤에 도리어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로부터 “뭐 그런 일로 싸우느냐”고 핀잔

갑상샘암을 이겨낸 최경수(46)씨가 그런 경우입니다. 최씨는 “암 투병이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분들도 그러기를 바란다며 그 말만큼은 신문에 꼭 실어달라고 했습니다.

최씨는 갑상샘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먼저, 느긋해졌습니다. 이전에는 화를 자주 냈다고 합니다. 특히 남편에게는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싸움이 잦았지요. 아이들로부터 “뭐 그런 일로 싸우느냐”고 핀잔을 들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제목을 놓고 서로 맞는다며 우기다 목청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라디오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였는데 노래 제목을 놓고 싸우다 아예 차를 세워 놓고 누가 맞는지 시비를 갈랐다고 합니다.




» 최경수씨
“지나고 보니 별것 아닌 일로 왜 그렇게 싸웠나 싶어요. 제 화를 덮어쓴 신랑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최씨는 요즈음엔 화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자주 든다고 했습니다. 남편, 아이, 시어머니, 친정 식구들, 친구 등 모든 이들이 그저 고맙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도 크게 줄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일하는 최씨는 까탈스런 손님을 만나도 속이 상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씨가 건강에 이상을 느낀 것은 2007년 7월께였습니다. 목이 붓고 아프고 머리에는 원형탈모증이 생겼습니다. 침을 삼키면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또 이유없이 우울할 때가 많았습니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그해 11월, 국립암센터에서 갑상샘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최씨의 수술을 맡았던 정기욱 교수는 “갑상샘암의 병기는 나이도 중요한데 최씨의 경우 전이가 있었지만 45세 이전이어서 1기로 진단됐다”고 말했습니다. 1기라면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암은 암이었습니다.

“조금 창피하더라고요. 그때 건강을 위해 기 수련을 하고 있었거든요.” 

과음도 않고 채식하는데 암에 왜 걸렸나

갑상샘암은 목 앞쪽 나비 모양의 갑상샘에 생기는 암으로 여성 발병률은 유방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흔한 암입니다. 진단기술의 발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 증가율이 25%가 넘을 정도로 크게 늘어나고 있는 암입니다. 그러나 갑상샘암은 90% 이상을 차지하는 유두암의 경우 진행 속도가 더디고 치료 뒤 10년 이상 생존율이 95%가 넘어 ‘순한’ 암으로 불립니다. 수술치료에 3~4일 정도만 입원하면 될 정도로 치료도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씨는 그보다 조금 상태가 나빠 일주일을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정 교수는 “중앙부 경부림프절과 함께 식경부림프절에도 전이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어 모두 잘라냈다”고 말했습니다.

최씨는 이듬해 3월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해 두 차례 방사성 동위원소 옥소 치료를 받았습니다. 옥소치료란 환자가 용액이나 캡슐 형태의 방사성 동위원소, 옥소를 먹으면 장에서 흡수된 옥소가 갑상샘 부위에 가서 방사선을 내뿜어 남아 있는 암세포를 없애는 방법입니다.

치료 경과는 좋았습니다. 후유증은 없었고 원형탈모증도 나았습니다. 재발이나 전이에 대한 걱정도 적었습니다. 그러나 최씨는 자신이 암에 걸린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특별히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채식을 즐겼습니다.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건강을 해칠 정도로 과음은 하지 않았습니다. 가슴 속에 묻어둘 정도의 큰 스트레스를 받은 일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최씨는 가족들의 병력을 더듬어봤습니다. 아, 자신과 식성이 비슷한 어머니가 갑상샘이 약했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도 왜 암에 걸렸는지 수긍이 가지 않았습니다.

기수련·108배·산책 … 스트레스 될까 일과표 안 짜­

» 원망대신 감사로 삶을 살고 있는 최경수씨의 미소가 아름답다.

자신의 돌아보니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1998년쯤 남편이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료 교사의 보증을 섰다 잘못되어 집이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졸지에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나 월세방에서 살아야 했지요. 남편은 다니던 학교에 실망해 교사 생활까지 그만뒀습니다. 조각가의 부정기적인 수입으로 가계를 꾸리기는 힘들었습니다. 2001년에는 그도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습니다. 낮에는 기계 부품 공장에서 사무를 보고 밤에는 어린이집 야간 교사로 일했습니다.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때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사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남편 원망도 많이 했고요.”

지금은 그 또한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러자 최씨에게는 삶 자체가 감사한 일이 됐습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과 함께 최씨는 건강을 위한 활동을 열심히 합니다. 일과표를 짜놓으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틈날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기수련을 하고, 여유가 있는 날이면 집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108배를 합니다. 절은 그에게 종교의식이 아니라 운동입니다. 또 저녁이면 집 부근의 철길을 따라 1시간 30분가량 산책을 합니다. 또 한 달에 두세 번은 북한산을 오릅니다.

식사는 현미 잡곡밥을 식으로 하고 과일이나 야채는 매일 먹습니다. 병을 앓고 난 뒤 몸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토마토와 고등어를 먹으면 알레르기가 생겼습니다. 한의원에 갔더니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막걸리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먹어요. 신랑이나 친구들이 술친구이지요. 즐거운 마음으로 살다 보니 감사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갑상생암이 그런 깨달음을 줬습니다.”

 

고양/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