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책임회피 일관
"작년 솔직히 시인했으면 좋게 마무리 됐을텐데…" 일부 PD들 싸늘한 시선
"법정공방 벌일 이번 사건 전체 언론에 악영향 우려"
MBC 'PD수첩' 제작진이 광우병 왜곡 보도로 불구속 기소된 것과 관련,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건 초기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법정까지 감으로써 전반적인 보도 환경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PD수첩' 제작진은 그동안 제기된 번역 왜곡 또는 의도적 오역 의혹에 대해 1년여 동안 '단순 실수'라는 주장만을 거듭하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작년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시청자 사과' 명령을 받고, 8월 12일 뉴스데스크가 끝난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결정사항 고지방송입니다"로 시작하는 형식적 사과를 고지한 게 이들이 취한 '조치'의 전부였다.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첫 방송(4월 29일) 이후 105일 만이었다. 'PD수첩'은 5월 13일 속편을 내보냈고, 온 나라는 '미국 소 먹으면 죽는다'는 구호로 출렁거렸다.
그러나 당시에도 MBC 노조는 경영진의 시청자 사과 명령 수용 방침에 대해 시위를 벌이고 방송 저지를 시도했으며, 'PD수첩' 제작진도 끝까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전 MBC 사장이었던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정치권에서 '불때기'에 나섰다.
최 의원은 CBS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방통심의위원들이 'PD수첩'에 시청자 사과 중징계를 결정한 것은 경범죄에 사형 선고를 내린 격"이라며 "마녀사냥을 통해 정치적 징계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노조와 일부 정치권의 반발이 쏟아지는 가운데, MBC 경영진은 대국민 사과는 물론이고 사태 수습을 위한 어떤 적극적인 대책도 내놓지 않은 채 수수방관으로 일관했다.
MBC는 앞서 법원의 정정·반론보도 판결도 인정하지 않았다. 작년 7월 서울남부지법이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 중 일부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정정 보도를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이들은 패소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17일 ▲한국인은 MM 유전자형 비율이 높아 광우병 위험이 크다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해도 정부가 독자적 대응을 할 수 없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모르거나 은폐하고 있다는 3가지 내용을 정정 보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 ▲ 작년 4월 29일 방송 이후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던 MBC ‘PD수첩—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송일준 PD가 스튜디오에서 진행을 하는 뒤 배경으로 '목숨을 걸고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합니까' 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다.
이를 두고 일부 PD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MBC 한 PD는 "지난해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했으면 좋게 마무리가 됐을 텐데 기회를 놓쳤고 이제 'PD수첩' 제작진으로서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법 외에는 남아 있는 길이 없는 셈"이라며 "경영진이 제작진의 해사(害社) 행위에 대해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은 것은 왜곡 보도로 인한 국가적 혼란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이재진 교수는 "'PD수첩' 제작진과 MBC가 책임질 부분을 일찌감치 인정했으면 법정 공방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언론 보도와 관련된 문제는 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한데, 이런 결과로 전체 언론 환경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방송사의 오보 사태가 벌어질 경우,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사과한다. 영국 BBC는 지난 2003년 5월 라디오 4뉴스를 통해 "블레어 정부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의 WMD(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를 조작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고등법원 판사 브라이언 허튼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고 이 위원회는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BBC 보도는 근거가 없었으며 정부 항의가 있은 뒤에도 이를 확인하고 바로잡지 못하는 등 보도제작 시스템에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BBC의 개빈 데이비스 이사장과 그레그 다이크 사장은 사과 방송과 함께 조사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미국 CBS는 2004년 시사 프로 '60분'에서 당시 상관의 메모를 증거 삼아 "부시 대통령이 부실하게 군 복무를 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가 오보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메모의 활자가 70년대 생산되지 않는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것으로 판명돼 위조된 것임이 밝혀졌고 사장이 직접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했다. 이어 외부 인사들의 진상 조사가 시작돼 선임 부사장, 프로그램 책임 PD 등 오보 당사자들이 해임됐고 24년 경력의 CBS 간판 앵커 댄 래더도 프로그램을 떠나야 했다.
일본 아사히TV는 사이타마현의 채소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오보를 내보낸 뒤, 사과 방송을 내보냈으며 피해자측에 화해금 1000만엔을 지불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