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천석·主筆
'중도'란 이슈·시절 따라 달라지는 붙잡기 힘든 신기루
다른 생각 끌어안고 귀 기울이는 신뢰와 포용 뒤따라야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中道) 강화론이 화제다. 작년엔 미국산 쇠고기, 올해엔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影幀)에 번번이 밀리고 쫓기던 여권이 오랜만에 공론(公論)의 장(場)을 주도하고 이끌어 가는 셈이다.
대통령은 스스로를 '중도 실용주의자'로 불러왔다. 이윤(利潤)이란 저울에 매사(每事)를 올려놓고 달아보는 기업에서 뼈가 굵은 입장에선 이념이란 말 자체가 낯설기도 할 것이다. 요즘 그 대통령을 두고 좌는 '독재자'라 하고, 우는 '우유부단하다'고 몰아세운다. 좌는 '극우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우는 '죽도 밥도 안 된다'며 핀잔을 놓는다. 좌·우 합작의 붓으로 대통령을 '우유부단한 독재자', '죽도 밥도 아닌 극우파'라는 이상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셈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이명박 정부가 '부자를 위한 정부'라고 응답한 사람이 70% 가까웠다고 한다.
대통령은 이게 불만스러워 중도 강화론을 꺼내 들었을 것이다. '국립대학 입시에서 지역·계층별 할당을 높여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학생들에게 기회가 돌아올 수 있게 하라'는 지시와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과 같은 약자 보호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견해도 이어서 내놓았다. 꼭 1년 후면 정권의 중간 평가인 지방 선거가 실시된다. 여기서 서울과 경기 인천 등의 한강 유역을 상실하면 그 순간부터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걷잡기 힘든 방향으로 굴러간다. 중도 강화론이 이 대목에서 이명박 정권의 보약(補藥)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중도 강화론을 내놓기에 앞서 비(非)TK 출신을 검찰총장·국세청장에 전격 기용했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정권은 부자들만을 위한 정권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TK라는 바퀴로 굴러가는 TK들만의 정권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 '당신은 무엇이다'라는 창(槍)을 '우리는 무엇이 아니다'라는 방패로 막으려 들 때 항상 위험이 따른다. 상대가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벌이는 싸움이라서 상대 논리에 먼저 말려들고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74년 워터게이트 와중에 자신들이 닉슨을 버리게 된 결정적 계기로 닉슨이 TV에 나와 "여러분,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해명하던 순간을 꼽았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닉슨은 사기꾼이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현재의 이미지를 바꿔나가려면 "우리는 부자 정권, TK 정권이 아니다"라는 부정(否定)만으론 부족하다. 그걸 넘어서서 "우리는 전 계층, 전 지역을 껴안는 정권이다"는 긍정(肯定)의 믿음을 뒤받쳐줄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 국민의 40% 가까이가 이념적 중도층이고,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이 사람들의 상당수가 가출(家出)해 버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갇혀 있다는 판단도 중도 강화론의 등장 배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좌우의 이념 축(軸)에서 중간에 위치한 고정적 중간층이 과연 존재하는가에는 여러 이론(異論)이 있다. '중도' '중간' '평균'이라는 말은 서로를 명확히 구분하기도 힘들다. 어느 통계학자가 보트를 타고 가다 강의 '평균 수심(水深)'이 자신의 키보다 훨씬 얕다는 말만 믿고 덥석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다는 서양 조크가 있다. 공교롭게도 뛰어든 곳의 깊이가 그의 키보다 몇 길이나 더 깊었던 것이다. '중도'·'중간'·'평균'을 설알고 설짚어서는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다.
사형제 존속을 지지하는 우파와 그걸 폐지해야 한다는 좌파 사이에 '중도'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을까. 전(前) 정권의 대북 정책을 퍼주기라고 공격하는 우파와 그것만이 남북협력의 길이라는 좌파 사이의 '중도'는 어디쯤일까.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밤 10시 이후 학원 심야단속을 펴야 한다는 논란의 찬반 사이에 낀 '중도'란 또 무엇일까. 어쩌면 모든 이슈에 대해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고정적 중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지 모른다. 오히려 정치적으론 우파, 그러나 사회정책 면에선 좌파적 정책을 일부 받아들이는 사람, 또는 경제적으론 좌파, 그러나 정치에선 우파적 정책을 수용하는 식으로 여러 유형의 이중 가치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떠올려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따라서 왼쪽으로 살짝 기운 정책을 펴 중도층을 이명박 정권 지지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은 까닥하다 장부상(帳簿上)의 지지층 증감(增減)으로 그치고 말 가능성이 다분하다. 최악의 경우 산토끼를 잡으러 간 사이 집토끼들이 모두 산으로 달아나버리는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
국민들은 특정 후보, 특정 정당의 정책이 자신의 생각과 같다고 해서 반드시 지지하고 틀림없이 표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세계에선 때로는 정책보다도 말과 행동이 일치할 것이라는 신뢰감, 생각이 다른 국민의 견해를 존중하고 그들의 소리에도 귀를 열고 품을 줄 아는 포용력으로 국민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결정적일 때가 있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줄을 서 기다리는 만난(萬難)을 타고 넘으려면 중도 강화론만으론 힘에 부친다. 신뢰와 포용의 정신이 더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