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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6.25 참전용사의 기막힌 사연

화이트보스 2009. 6. 30. 22:44

어느 6.25 참전용사의 기막힌 사연
이재호  이재호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09.06.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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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뭐예요?”

지난 3일 오랜만에 국립현충원에 전우들을 만나러 지하철을 탄 함성환(80)씨는 옆 에 앉은 남자 고등학생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함씨가 자신을 ‘6.25 참전유공자’로 소개하자 학생이 ‘6.25가 뭐냐’며 물어 온 것. 당황한 함씨가 목청을 높였다. “몰려드는 적들 속에서 배고픔을 견디려고 나무껍질을 먹어 가며 싸웠어. 그렇게 이 나라를 지킨 게 6.25야.”한참을 듣고 있던 학생이 되물었다. “그런데 나무껍질은 왜 드셨어요? 차라리 라면을 드시지.” 함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 이달에는 전국적으로 수백 건의 크고 작은 기념행사들이 열린다. 그때마다 화려한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신문과 방송에선 참전유공자를 기념하는 특집기사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내 사그라지고 잠시 영웅으로 비춰졌던 유공자들은 다시 냉엄한 현실을 직면한다. 함씨는“6.25만 지나면 모든 게 끝입니다. 일년 중 오직 단 하루만 사람들은 우릴 기억해 줍니다. 그 하루도 이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나 봅니다.”고 말했다. 명예와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80살 노병의 얼굴에서 분노와 회한으로 깊게 파인 이마 주름이 꿈틀거렸다.

 

함씨의 월수입은 15만 4천원이다. 참전유공자 명예수당 8만원과 노령연금 7만 4천원을 합친 금액이다. 함씨는 심장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부인과 함께 서울 봉천동의 8평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 “아들 녀석은 몇 년 전 주식투자로 돈을 날리고 연락이 뜸해졌고 딸은 얼굴 못 본지 벌써 몇 해 됐습니다.” 함씨 부부는 아들이 부양의무자로 등록돼 있어 기초생활 보호 대상자에도 선정 될 수 없다. 가끔 동사무소 에서 나오는 쌀과 자원봉사자들이 해주는 김치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부인이 동네를 지나다 버려진 쌀과 국수를 주워와 함께 먹었다. “벌레 먹은 쌀이었어요. 국수는 유통기한이 지난 거구요. 병든 아내가 주워온 국수를 먹다 보니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눈물이 나더군요.”

 

   함씨는 육군 제6보병사단 소속이었다.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용문산 전투에서 결사대로 뽑혀, 물밀 듯 밀려오는 중공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냈다. “대원들이 한 500명쯤 됐습니다. 대대장이 오더니 적을 막아 살거나 아님 싸우다 죽어라.” 고 말하더군요. 그길로 바로 전투현장으로 투입됐습니다. 도착해보니 중공군이 몇 만은 돼 보였습니다. 잠도 못자고 며칠을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한국전쟁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사람들을 정부는 지난해 2월28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개정법’을 통해 참전유공자로 지정했다. 지정된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매달 8만원의 명예수당을 받는다.

또 다른 참전유공자 이병용(80)씨는 “어디 가서 참전 유공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는 걸로 아는데, 창피해서 한달에 8만원 받는단 말은 죽어도 못하겠더라고.”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씨는 함씨와는 달리 기초생활보호대상자다. 그는 시흥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고 있다.  몇 년 전 부인이 폐암으로 별세했고 딸들은 나이가 들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자식들하고 같이 살고 싶지. 하지만 애들도 남편하고 시부모가 있는데 그럴 수 있나?” 죽으면 죽었지, 자식들한테 짐이 되긴 싫어.” 이씨는 요즘 고혈압이 심해져 동네 보건소에서 약을 타먹는 일이 잦아졌다. 생활비라도 벌어보려고 동네 아파트 경비직에 지원했다가 “할아버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일 시켰다가 돌아가시면 저희 책임이라 안돼요.”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2008년 국가보훈처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생존해 있는 6.25 참전유공자는 22만 6000명, 이중에 1만 2000명은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가구기준 132만원)이하인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에 선정되면 매월 정부로부터 약간의 생활비를 지급받는데 만약 서류상에 부양자가 있으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함씨처럼 부양의무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부양을 못하는 참전용사들은 국가와 가족 모두에게 도움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국가 보훈처는 올해 1월부터 예산 26억을 들여 6.25 참전 유공자 복지수요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사가 얼마나 큰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국가보훈처의 한 직원은“일단 상황파악을 위해 실태조사를 하고 있지만 조사 결과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반영될 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6.25 참전유공자회 금천지회 김준옥(77)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유공자들이 80세 이상이다. 그들이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당 몇 푼 이 아니라 젊은 시절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는 것을 세상이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의료, 교통, 의식주 등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배려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강조했다.       


  호국의 달 6월의 현충원에는 유독 6.25 전사자 묘지만 무척 한산하다. 당시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이 점차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한해 동안 고인이 된 6.25 참전유공자의 수는 1만 2000여명. 한달에 1000여명 꼴로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 살아있는 용사들도 냉혹한 현실과 싸우며 먼저 간 전우에게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일보 사진부 이재호기자-superjh@chosun.com

 

사진/ 조인원, 이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