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강 교수
서울 구파발 월셋방에 살았던 때, 의대에 합격하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그 시절, 하지만 그때에도 아버지는 나의 우상이었다.
우리 집에 또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아버지에게 폐암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처음 진단은 3기 말.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진상으로는 4기였으나 의사가 반대쪽 작은 부분을 판독하지 못한 채 한쪽의 암만을 진단한 것이다. 3기말의 경우 방사선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던 즈음 반대쪽 암이 커졌으며 나는 이것이 두가지 암이 같이 발생한 것(Double primary)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만일 방사선 치료를 받았던 곳의 암이 전이된 것이라면 시간상 반드시 다른 곳의 전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전 치료효과가 워낙 좋았기에 반대쪽 암도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사진상으로 암이 거의 사라질 즈음 문제가 또 터졌다. 20~30대에 불과한 치료방사선과 레지던트가 환갑을 넘긴 아버지에게 반말을 일삼았고, 이에 격분한 아버지는 방사선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 암은 다시 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며칠을 울며 수술을 받도록 재촉하였고 결국은 아버지는 수술을 선택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암은 매우 서서히 자라는 형태였기 때문에 분절(Segment)만 작게 떼어내도 충분하리라 생각됐다. 그러나 수술범위는 처음 예상과 달리 커졌고 아버지 폐의 기능은 매우 약한 상태가 되었다.
화(禍)는 이어졌다. 수술 수일 후 갑자기 출혈증상이 생겼다. 수술집도 의사는 그것이 수술부위에서 생겼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기관지 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그것은 위궤양에 의한 출혈이었고 사실은 아버지가 과거 위궤양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수술 받은 부위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숨이 차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에 달려갔더니 병원에는 아버지 문제를 책임질 스텝도 레지던트도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또 응급 상황에서 고장난 인공호흡기가 아버지에게 사용되었고 이것은 기관지의 습도가 조절되지 않는 것이어서 기관지의 찌꺼기를 배출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관지내 섬모 운동을 저하되게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수일 후 폐렴이 호전이 없자 수술 집도의는 폐부전(폐에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병)일 수 있다며 다량의 스테로이드 주사를 내 동의를 얻어 시행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후 아버지의 면역력은 더욱 급격하게 약화되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껴안고 몇시간을 울었다.
그리고 수일이 지나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만일 치료방사선과 레지던트가 조금만 친절하였다면,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수술의 범위가 좁았다면, 위출혈에 대한 적절한 대처만 되었다면, 기관지 내시경(이것이 폐렴의 원인일 수 있다)만 하지 않았다면, 인공호흡기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다량의 스테로이드를 쓰지만 않았다면하는 별의별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배들은 전문의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서로 번갈아 가며 나의 자리를 메워줬고, ‘죽을 만큼 열심히 환자를 치료하라’는 어느 선배의 말에 나는 다시 의사가 되었다.
병원에서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일에 몰두했다. 체력이 고갈되어 눈앞이 휘청거리던 어느 날 저녁 나도 모르게 20분 정도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들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꿈이라고 생각되지만 나는 그것이 아버지임을 직감했다. 짧은 수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피로는 씻은 듯이 없어졌으며 그날 이후 정상 생활을 되찾게 되었다. 아버지는 죽어서도 죄인인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시나 보다.
지금도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은 나 자신은 용서할 수 없지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병원의 시스템이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는 좋아졌겠지만 아직도 그런 문제가 도처에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아버지를 미국이나 일본에서 치료를 받게 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은 아마 수천 번도 더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인력은 우수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적은 돈으로 모두의 건강을 커버하려 한다는 것은 우리 경제력이 영국, 미국 수준이 될 때까지는 허점 투성이로 남겨질 것이다. 중환자실은 적자가 나니 적절한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외과의들은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수술을 하게 된다. 수술비가 싸고 장래의 비전이 없으니 외과계열의 지원을 기피하고 그리하여 흉부외과와 같은 주요한 과에 스텝도 적고 레지던트도 거의 없다.
의사가 수퍼맨이 되길 모두가 바라고 있으나 한 환자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며 실수는 연발될 수 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한국의 병원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바치더라도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렸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심정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