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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넘어야 한반도 미래가 보인다박두식 논설위원 dspark@chosun.com

화이트보스 2009. 8. 7. 11:14

중국을 넘어야 한반도 미래가 보인다

입력 : 2009.08.06 22:18

"중국은 눈 깜짝할 사이에 미국과 경쟁하는 G2 반열에 올랐다
두 강국의 각축 무대는 한반도가 될 것이다"

중국은 이제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장벽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이 정치·경제·군사·외교 등 핵심 분야에서 우리에게 어렵고 힘든 결정을 강요하는 존재로 등장한 것이다.

중국은 올 들어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주요 2개국(G2)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콧대 높은 유럽의 전통 강국들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프랑스는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티베트 독립 문제를 거론했다가, 중국이 프랑스로부터 항공기를 구매하려던 100억달러 프로젝트를 취소하자 사르코지 대통령이 후 주석의 호텔로 찾아가 "프랑스는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예 "미·중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兩者) 관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런던 회의 때 후 주석에게,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 150여명을 모아 놓고 이 말을 되풀이했다.

중국이 언젠가 미국에 도전하는 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선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구도 중국이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G2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미국부터 그랬다. 미국은 세계 유일 초강국의 지위를 누려온 지난 20년간 중국을 향해 늘 '잠재적 강국'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곤 했다. 인구나 국토 면적 등 규모에선 미국에 견줄 만하지만 진정한 강국으로 인정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간 미국은 주기적으로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을 윽박지르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 터진 뉴욕발(發) 경제 위기로 미국이 휘청거리고, 중국은 그간 모아놓은 달러의 힘을 과시할 수 있게 되면서 미·중 역학관계에도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은 미국 국채(國債) 발행 잔액의 13% 가까운 8015억달러를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다. 최근 워싱턴 회의에서 왕치산(王岐山) 부총리가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을 향해 "재정 적자 관리를 잘하라"고 큰소리를 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2008년 세계 군사비 지출을 보면, 미국은 6073억달러로 1위고, 2위 중국은 849억달러다. 10위 안에 든 9개 나라를 다 합쳐도 미국의 절반을 약간 넘는 정도다. 미국은 85대의 공격용 제트기를 발진시킬 수 있는 핵 추진 항공모함을 12척이나 갖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 한 척도 실전 배치하지 못한 상태다. 세계 역사에서 이처럼 전략적 우위가 뚜렷한데도 스스로 헤게모니를 포기한 나라는 없다. 미국 역시 초강국의 지위를 중국과 나눠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은 세계적 차원의 헤게모니 국가가 되기 위해 움직여 나갈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한국 외교의 근본적 딜레마로 등장했다. 한반도야말로 두 강국의 힘이 유형·무형으로 부딪히는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에 "미국과 동등한 대접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고 한다. 물론 중국이 드러내놓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이 대통령은 한·미·일 관계 복원을 최우선순위로 내걸었고, 취임 첫해인 작년 4월 미국과 일본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 중국 방문은 한 달 뒤인 5월이었다. 올해도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했지만, 아직 중국과는 정상급 방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일까. 주(駐)중국 한국대사는 부임 8개월 만에 자신의 카운터파트 격인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외교가에선 주미(駐美) 한국대사가 총리 출신인 반면, 중국 대사에 직업 외교관 출신을 보낸 것에 중국이 불만을 갖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지난해 출간한 외교분야 베스트셀러 '흔들리는 세계의 축'이란 책에서 중국이 위협적으로 힘을 과시하는 것은 대응하기 쉬운 반면, 조용히 자신의 비중과 영향력을 늘리며 미국을 한쪽으로 몰아내는 상황을 더 어려운 외교적 도전으로 꼽았다. 실제 중국은 2003년 이후 '화평굴기(세계 속에서 평화롭게 산처럼 우뚝 선다)'를 대외정책의 기본 노선으로 삼고 있다. 조용하게 압박해 오는 중국의 존재감은 이미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런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풀어가느냐는 나라의 장래와 직결된 사안이다. 중국이란 장벽에 부딪힌 북한 문제야말로 왜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