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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건에서 ‘절반의 실패’도 자랑스러워

화이트보스 2009. 8. 31. 17:13

어려운 여건에서 ‘절반의 실패’도 자랑스러워 [조인스]

2009.08.30 16:34 입력 / 2009.08.30 16:52 수정

‘아리랑 1호’ 주역 류장수 회장이 본 나로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첫 국산 위성인 ‘아리랑 1호’의 개발 책임자였던 류장수 AP시스템 회장은 발사체와 위성을 기반으로 한 활용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정동 기자
지난 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의 VIP실. 굉음과 화염을 내뿜으며 지상을 떠나는 나로호를 남다른 심정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10년 전인 1999년 첫 국산 위성인 아리랑 1호의 개발총괄을 맡았던 류장수(57) AP시스템 회장이다. 당시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부장이던 류 회장은 사람과 기술을 끌어 모아 황무지 상태였던 국내 우주산업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했다. 2000년 AP시스템을 창업, 위성과 반도체·LCD 장비 등을 만들며 한 해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회사로 키웠다. “비록 ‘절반의 실패’에 그쳤지만 설계와 부품·기술까지 모두 외국에서 들여와 만들던 예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성장한 국내 우주산업의 위상을 보여줬다”는 게 나로호에 대한 그의 평가다. 28일 오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안에 있는 AP시스템 서울사무소에서 류 회장을 만났다. 한국의 우주개발정책을 결정하는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인 그는 이날 오후 대전 항우연에서 열릴 나로호 발사조사위원회에 참석 준비 중이었다.
 
-발사 성공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궤도진입 실패 소식이 들려왔다.
“차분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로호의 진정한 의미와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우주기술국이 되려면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 발사체와 위성, 운용시스템이다. 최근 10년간 많은 위성을 발사하면서 한국의 위성체 기술은 이미 입증이 됐다. 나로호는 나머지 두 가지를 검증하기 위해 발사된 것이고, 이만하면 정말 잘했다고 본다. 로켓 1단을 빼고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들었다. 페어링 미분리를 빼면 기술적 흠결이 없었다. 어려운 단 분리와 통신 등 발사의 전 과정을 통제하는 시스템도 잘 작동했다. 아쉽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아리랑 1호 개발 때의 어려움이 떠올랐을 것 같다.
“89년 항우연 창립 멤버로 참여해 위성을 만들겠다고 하니 ‘당신들이 미 우주항공국(NASA)인 줄 아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어렵게 당시 과학기술처를 설득해 예산을 받았다. 기초부터 시작하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중간진입전략을 택했다. 외국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돈을 주고서라도 들여와 개발기간을 단축하자는 거였다. 그런데도 실력이 부족했다. 설계는 물론 제작 과정까지 미국 TRW사에서 하나하나 배워야 했다. 그래서 아리랑 1호는 사실 두 대가 만들어졌다. TRW에서 ‘교육용’으로 만들어준 것과 국내 연구진이 그대로 따라 만든 것이다. 99년 위성 발사가 성공하자 미국 쪽에서 ‘한국이 자체 제작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준 거 쏘아올리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말리는 데도 왜 우주산업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나.
“한마디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산업 자체의 경제적 효과도 막대하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 기의 발사체와 위성이 쏘아올려진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이를 활용한 서비스산업은 규모가 훨씬 크다. 통신위성은 비용의 30배에 이르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한국만 해도 GPS를 이용하는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장비 시장만 연간 3000억원 규모다.”

류 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KAIST에서 로켓 추진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76년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가 군용 미사일 개발을 맡았다. 그와 동료들의 피땀 어린 결실이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백곰·현무 미사일이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주인공인 이휘소 박사도 당시 국과연 동료였다. 류 회장이 국과연을 그만둔 이유도 이 소설에서 찾을 수 있다. 신형 미사일 시험발사를 마친 1년 뒤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됐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과연 사람 중 80%가 해고됐다. 흔치 않은 분야의 박사라는 이유로 해고를 면했지만, 류 회장은 이때부터 ‘우주개발이라는 무궁화 꽃을 피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군사적 측면에서 우주기술을 개발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걸 절감했다. 민감한 국제정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국제적으로 투명하게 검증받을 수 있도록 민간 차원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옮긴 항우연에서의 10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리랑 1호를 무사히 쏘아올렸고 2호의 개발 총괄을 맡아 원없이 하고픈 일을 했다. 그러던 2000년 그는 항우연을 나와 AP시스템(당시 아태위성산업)을 설립했다. 벤처거품이 꺼져가던 때 만들어진 자본금 5000만원짜리 작은 회사였다.

-연구에서 사업으로 방향을 돌린 이유는.
“원장 응모했다가 떨어졌다(웃음). 평소 해오던 생각도 있었다. 우주산업을 키우는 데 민간의 역할이 중요한데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위성·발사체를 만들고 운영을 잘하려면 부품·소재·기술 등에서 민간의 뒷받침이 필요한데 대기업조차 필요성을 못 느꼈다. 자체 발사체로 위성을 쏘아올리고 난 다음 열릴 엄청난 시장을 외국에 다 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당시 현대전자가 어려워지면서 위성통신 분야를 맡던 임직원들이 새 일을 찾고 있었다. 이들과 힘을 합해 회사를 꾸릴 수 있었다.”

-어떻게 자리를 잡았나.
“기술과 경험을 살려 위성통신 단말기를 개발해 보기로 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위성 단말기가 별 쓸모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통화권의 제약이 없고 해외로밍도 할 필요가 없다.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싼 요금으로 통화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위성과의 교신을 위해 안테나 출력이 강해야 하다 보니 덩치가 크다는 단점을 극복하려고 힘을 다했다. 2003년 미국 최대업체를 물리치고 아랍에미리트의 위성통신사업자인 투라야에 단말기 공급계약을 따내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26만 대, 1억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앞으로 16만 대가 계약돼 있다. 올초 국책과제인 위성이동통신 기간통신사업자로 선정됐고, 국가 기간 무선망 사업인 테트라 원천기술 개발 과제도 지식경제부로부터 수주해 개발 중이다.”

-위성 사업도 꾸준히 해온 걸로 알고 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항우연에 인공위성 부분체를 만들어 공급해 왔다. 우리 연구원들이 항우연에 파견돼 위성개발에 참여한다. 최근엔 관측위성의 핵심 장비인 영상데이터고속처리장치(IDHU)를 국산화해 내후년 발사될 무궁화3호 위성에 탑재할 예정이다. 이 장치는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디지털로 고속 변환해 지상 기지국에 보내주는 위성의 핵심이다. 앞으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상업위성 전체를 자체 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LCD 장비 등을 만드는 코닉시스템과 합병했는데.
“전자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고 클린룸이 필요해서다. 클린룸은 위성을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회사 규모도 커졌다. 지난해 AP시스템이 500억원, 코닉시스템이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엔 두 회사 매출이 적어도 1000억원, 많게는 1250억원 쯤 될 것이다. 연구 여력이 확충돼 350명의 임직원 중 200명이 연구원이다. 이들이 최근 뜨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 우리 회사를 최고로 만들어준 존재다.”

-앞으로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나.
“발사체나 위성을 파는 게 우주산업의 전부가 아니다. 경제적 효과가 가장 큰 활용 분야에서 민간의 역할을 키우고 싶다. 상품의 위치추적, 미아 방지 목걸이 등 사소한 것부터 국가적인 일까지 위성을 활용해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궁무진하다. 국가는 우주산업 인프라를 담당하고, 민간은 이를 창의적으로 응용해야 한다. 반도체나 LCD 장비 분야에선 아직도 많은 핵심 장비가 수입된다. 이를 국산화해 성능 좋고 값싸게 하는 게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주산업을 위해 국가와 사회에 바라는 것도 있을 텐데.
“고생한 연구인력을 질책하기보다는 격려해 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등에서도 발사체나 우주왕복선이 발사대에서 주저앉고 상공에서 폭발하는 등 숱한 실패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목표에 얼마나 더 다가섰는지를 측정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이공계 인력을 사회가 우대하고 인정해 준다고 느낄 때 더욱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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