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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김정일 구하기'

화이트보스 2009. 9. 13. 19:37

오바마의 '김정일 구하기'

  • 김대중·顧問

입력 : 2009.09.13 19:05 / 수정 : 2009.09.13 19:17

북한이 그토록 바라왔던 미·북 양자(兩者) 대화를 미국이 받아들였다. 그 실마리는 아마도 지난 8월 초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미국 여기자 2명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이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을 만났을 때 보즈워스 미 대북특사의 방북을 주선했다고 VOA(미국의 소리) 방송이 12일 보도한 것을 보면 클린턴은 빈손으로 간 것도 아니고 김정일도 공짜로 기자를 내준 것이 아닌 모양이다. 기자 석방과 미·북 직접 접촉은 별개인 양, 그래서 오바마의 대북자세는 결연했던 것처럼 선전됐던 것은 한마디로 쇼였다.

북한은 오바마의 등장 이후 6자회담의 틀을 고집하는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없자 지난 7월 15일 북한 권력서열 2인자인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입을 통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며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해 버렸다. 클린턴의 방북내용을 타진한 중국은 6자회담 의장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8월 17일부터 21일까지 평양에 보내 '6자회담 틀 안에서의 양자 회담'을 설득하고 종용했으나 오로지 미·북 양자회담에만 매달리는 북측의 입장만 확인했다. 어쩌면 그때 이미 북측의 그런 의지를 '양해'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국 국무부가 북·미 대화를 발표하면서 관련국의 "컨센서스(합일점)가 형성돼 있다"고 한 것은 중국의 양해를 시사하는 것이다.

북한은 우다웨이와의 접촉을 계기로 미·북 양자 대화의 분위기를 밀고 나간 것으로 보인다. 8월 2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단으로 서울에 온 김기남 등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23일 면담자리에서 김정일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떠나면서 흡족한 결과를 얻은 듯이 말했다. '남과 북 지도층의 만남'을 미끼로 던지면서 미국과의 만남이 먼저 이뤄질 것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어 9월 1일 북한의 외무성 부상인 김영일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베이징을 방문했고 북한은 개성에 억류 중인 기업인과 연안호 선원을 석방하는 한편 남북 이산가족 재회프로그램을 재가동하고 금강산 관광도 다시 열 듯이 유연하게 나왔다.

북한은 그러는 와중에 9월 3일 보즈워스 미 특사가 6자회담 타진차 한·중·일 3국 순방에 나서는 날 유엔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의 우라늄 농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있고 폐연료봉 처리도 마무리 단계이며 이미 추출한 플루토늄도 무기화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일견 북한의 대미 접근책과 어울리지 않는 강경노선인 듯 보이지만 실은 북한의 그런 기술개발을 차단하는 일이 시급하며 미국이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자신들은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내비치는, 일종의 '미·북 대화 촉진제'로 띄운 것이라는 것이 오바마의 자문 역할도 했던 조엘 위트 전 미국 국무부 북한담당관의 설명이다.

그동안 외교분야에서 별다른 실적을 보이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이 근자에 "당선되면 적대국과 과감한 협상을 하겠다는 공약은 어디로 갔느냐"는 미국 내 비판자들의 목소리에 눌린 듯하지만 어쩌면 북한의 '우라늄농축 마무리'발언은 오바마의 대북 입지(立地)를 살려주는 '짜고 치는 고스톱'의 인상마저 준다. 보즈워스가 3국 순방을 마치면서 "북한의 태도에는 변한 것이 없다"거나 "6자회담의 틀이 아닌 양자회담은 없다"거나 "평양에 갈 계획이 없다"는 등의 발언을 했던 것도 이제 와서 보면 양자회담으로 가기 위한 연막작전이 아니었던가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 북한은 왜 미·북 대화에 이처럼 절실히 매달리는 것일까? 북한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 북한 관측통들의 일치된 견해다. 냉해(동해안지역)에, 폭우(황해도 지역)에, 비료부족으로 인한 병충해(평안도 지역)마저 겹쳐 북한은 내년 초가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한다. 지난 98년 식량 위기 때 못지않은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데 한국은 핵 포기를 앞세워 원조를 않고 있고 미국의 지원은 이미 끊긴 데다 중국마저 북한을 압박하는 상황이며, 대내적으로는 김정일의 중병설, 권력승계의 잡음 등이 겹쳐 북한은 이 위기의 출구로 미국을 잡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의 태도는 과연 이명박 대통령의 자신감만큼 안정되고 믿을 만한 것인가? MB는 11일 안보자문단 모임에서 북핵문제에 '새로운 전기(轉機)'가 마련될 것처럼 얘기하면서 남북 대화 분위기의 주도적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반도문제와 북한의 생존문제에 관한 한, 한국을 보조적, 부차적 또는 제3자적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황강댐 방류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결국 앞으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북한의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권을 구실로 핵의 유지를 인정하고 북한의 경수로 건설에 필요한 지원을 논의하는 데 있어 한국은 '돈과 기술만 대는' 과거 행태의 재연에 이끌려 다니는 꼴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우리 외무부가 "대북 제재는 계속돼야 한다"는 한가한 논평이나 내고 당국자들은 "북의 의도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있는 동안, 오바마의 '실용'은 서서히 가동되고 있고 MB의 '실용'은 거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면 북의 김정일은 또 한번 쾌재를 부를 것이다. 김정일이 식량 위기, 경제난 등으로 인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갈 수밖에 없는 절호의 기회를 한·미는 또 놓치고 있다. 98년에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