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겨례의 지도자

카다피의 혀, 유엔총회서 96분간 '막말 테러'

화이트보스 2009. 9. 25. 06:30

카다피의 혀, 유엔총회서 96분간 '막말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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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9.25 02:33

"우리 아들 오바마 영원히 美대통령 해야
신종플루는 백신 팔려고 만든 파괴 무기"
"안보리는 테러 이사회" 연설중 유엔헌장 찢기도
"유대인 미워하는 건 서방… 우리가 그들을 보호할것"

"신종플루는 군사 목적, 혹은 백신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파괴 무기다. 내일 당장 돼지플루가 아니라 물고기플루가 돌 수도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집권 40년 만에 처음 참석한 유엔 총회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연설 제한 시간 15분을 넘기자 붉은 경고등이 깜빡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96분간 대리석 연단을 '점령'한 채 장광설을 이어갔다. '무기력한' 유엔, 식민지배 보상, 심지어 케네디 미 대통령 암살사건까지 안 건드린 문제가 없었다. 같은 리비아인인 총회 의장으로부터 "혁명의 지도자, 아프리카연합(AU) 총재, 아프리카 왕 중의 왕"으로 소개받고 버락 오바마(Obama) 미국 대통령에 이어 연단에 오른 그는 갈색 빛의 품이 넓고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아프리카 대륙 모양의 검은 브로치를 가슴에 달았다.

카다피는 먼저 유엔을 도마에 올렸다. 그는 "유엔은 지금 아무나 나와서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장소가 됐다"며 "유엔은 창설 뒤 발발한 65차례 전쟁에 대해 무능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아니라 '테러 이사회'라 불러 마땅하다"고 했다. 또 5개 강대국이 비토권을 가진 현 안보리 체제를 "다른 나라를 2류 취급하는 정치적 봉건제"라 비판하며, "유엔 본부를 리비아로 옮기자"고도 했다. 연설하다가 유엔 헌장을 찢어 던지기도 했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조사하려다 암살됐다"는 이색 주장도 폈다. 또 "아프리카 수천 왕국의 이름으로, 서방세계에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배상으로 7조7700억달러를 요구한다"고도 했다. 그는 "히틀러의 예에서 보듯이, 유대인을 미워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서방국가)"이라며 "아랍이 유대인을 보호해 주겠다"고도 했다.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냈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케냐인 아버지를 둔 흑인 오바마를 줄곧 "우리 아들"이라고 부르며, "지난 8년간(부시 정권을 지칭)의 어둠 뒤에 온 한 줄기 빛"이라고 했다. 그가 "오바마가 영원히 미국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땐 총회장 여기저기서 폭소와 박수가 터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카다피가 연설하는 동안 힐러리 클린턴(Clinton) 미 국무장관 등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항의 표시로, 혹은 지쳐서 자리를 떴다. 통역사도 지쳐 연설 도중에 두 차례 교체됐다. 유엔총회 의장인 전(前) 리비아 외무장관까지 자리에서 졸았다. 유엔은 이날 다른 정상들의 연설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통상 2시간인 점심시간 없이 오후 일정을 이어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카다피의 연단 '점령'이 최장 기록은 아니다. 국가 정상으로는 피델 카스트로(Castro)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960년 4시간29분간 연설한 것이 최장이다. 비(非)정상급 인사로는 1957년 크리슈나 메논(Menon) 주(駐)유엔 인도 대사가 9시간 논스톱 연설을 했다.

한편 이날 유엔본부 앞에서는 카다피의 지시로 198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 여객기 폭파 테러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