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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김정일, 그 뒤 1년

화이트보스 2009. 10. 26. 17:50

뇌졸중 김정일, 그 뒤 1년 [중앙일보]

체중·혈당·혈압, 그를 쓰러뜨리고 그를 살렸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 14일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전 세계의 언론은 그가 과연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지에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그의 재활 과정은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드러난 사진과 동영상은 김 위원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으며, 재활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환자 김정일’의 뇌졸중 발병과 투병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29일은 ‘세계 뇌졸중의 날’이다. 전형적인 뇌졸중 고위험군에서 환자로, 그리고 다시 재활로 이어지는 김 위원장의 1년여 투병 과정을 서울대병원 신경과 윤병우 교수와 함께 분석해봤다.

위험요인 많을수록 피하기 힘든 뇌졸중

‘66세의 고령. 1m66㎝, 80~85㎏의 비만 체형(BMI 29~31, 25 이상이면 비만). 그리고 당뇨병·고혈압·관상동맥 질환을 보유’.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당시 김 위원장의 질병 이력이다. 2006년 진료기록상 공복 혈당이 220㎎/dL(정상 100㎎/dL 이하)일 정도로 혈당관리도 안됐고, 관상동맥 역시 두 번의 심장병 수술을 받을 정도로 막혀가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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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는 “뇌졸중은 위험인자가 많을수록 피해가기 힘든 병”이라며 “당뇨병·심장병·고혈압·과음·흡연·비만·고지혈증·고령·스트레스 등 위험요인이 겹칠 경우 위험률이 곱하기로 증폭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뇌졸중 발병 위험이 당뇨병 환자는 일반인의 3배, 심장병 환자 역시 3배인데 이 두 질환에 모두 걸렸을 땐 위험률이 9배로 뛴다.

김 위원장은 확인된 위험요인만 비만·과음·심장병·당뇨병·고령 등이 꼽힌다. 게다가 정신적 스트레스와 고지혈증까지 더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발병 시기가 문제지 뇌졸중 자체를 피하긴 힘들었던 셈이다. 뇌졸중을 예방하려면 결국 이 같은 위험인자를 평생 피해야 한다.

초기 집중 치료와 감량 성공이 회복의 열쇠

그는 쓰러진 지 25일째인 9월 9일(북한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은 물론 약 두 달 뒤인 10월 10일 노동당 창당일에도 불참했다. 그러던 그가 80일이 지난 11월 2일엔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이동이 가능하고, 부축 없이 혼자 서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됐던 것. 단, 왼손은 힘없이 늘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로도 회복이 지속돼 한 달 뒤(12월 1일)엔 중앙동물원에서 난간을 잡은 채보폭을 좁혀 옆으로 움직였고, 열흘 뒤(12월 11일)엔 양계장에서 왼팔을 가슴까지 들어올리는 사진도 공개됐다. 또 발병 넉 달째엔(12월 18~19일) 두 손을 얼굴까지 올려 손뼉을 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 무렵부터 이전에 비해 볼이 움푹 들어간 수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윤 교수는 “뇌졸중의 재발을 막고, 회복을 촉진하기 위해선 발병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으며 위험인자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수척해 보일 정도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 데다 좋은 의료진으로부터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은 덕분에 66세의 고령임에도 빠른 회복을 보였던 것이다. 실제 두 달 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당히 건강한 상태며, 북한에 대한 통치권을 여전히 행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부위마다 회복기간 달라

재활의 1등 공신은 체중 감량을 통한 혈당과 혈압 조절이다. 실제 혈압만 해도 20(수축기)/10(이완기)㎜씩 감소할 때마다 뇌졸중 재발 위험은 절반씩 준다.

물론 뇌기능이 발병 이전 상태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실제 지난달 4일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를 포옹하면서 왼손 검지손가락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사진). 윤 교수는 “팔다리가 마비됐다면 다리 기능이 먼저 회복되며, 이후 순차적으로 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 마지막으로 손가락 회복이 가장 더디다”고 설명했다. 재활치료를 잘할 경우 1년 정도 지나면 뇌기능이 발병 전의 90%까지는 회복될 수 있다. 이 정도면 김 위원장이 건재함을 과시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뇌졸중의 후유증을 줄이고, 재활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발병 후 얼마나 빠른 시간에 의료처치를 받느냐는 데 있다. 윤 교수는 “뇌졸중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초기 증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움직이지 못하거나 수저를 떨어뜨릴 때, 말을 못할 때, 심하게 어지럽거나 두통을 호소할 때, 시각장애가 나타났을 때 등 다섯 가지 증상이 나타나면 곧 119를 불러 대형 병원으로 직행하라”고 조언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se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