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완패한 한나라 다시 확인한 ‘박근혜 힘’
10·28 재·보선 결과는 ‘박근혜의 힘’을 역설적으로 입증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 전 대표가 선거 불개입 원칙을 고수한 것이 한나라당의 수도권과 충북 전패 등 ‘내용상 완패’에 적잖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두 차례 재·보선에서 여당이 패배한 것이 외려 박 전 대표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양상이다.
정몽준 대표가 경기 수원 장안에 올인하면서 시도한 ‘박근혜 없는 선거 승리’가 무산된 것도 결국 ‘박근혜뿐’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결과가 됐다. 실제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있었다면 보수세가 강한 수원 장안의 선거 결과가 달리 나왔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나라당 박찬숙 후보가 초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 전 대표는 영남 보수층에 콘크리트표가 있다”면서 “한나라당이 장안에서 진 것은 (박 전 대표가 나서지 않아) 영남 보수가 선거 참여를 꺼린 것도 한 원인”이라고 했다. 이유야 어쨌든 그의 불개입이 이 지역 영남 출신과 보수층들에게 굳이 투표장까지 가야할 필요가 없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내에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박 전 대표의 지원없이 치를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4·29 재·보선에 이어 수도권에서 참패한 결과를 지켜본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이런 의견이 강하다. 경기도의 한 친이계 의원은 “지금 상태론 지방선거를 이길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를 찾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의 당내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확대될 개연성이 크다.
박 전 대표 측은 아직은 신중하다. 당장 박 전 대표는 선거 다음날인 2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도 불참하는 등 ‘선거 이후 국면’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이런 이유는 복합적이다. 당장은 ‘당의 참패로 박근혜의 위력이 확인됐다’는 상황은 결국 ‘박근혜 책임론’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우려했을 법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청와대가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추진’ 등에 대한 민심 이반을 재차 확인한 만큼 여권 핵심부와 더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물론 친박계 의원들도 재·보선 결과에서 한 발 벗어나 있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결과에 대해 늘 겸허하게 민심을 수용해야 할 뿐 지나친 의미 부여는 곤란하다”고 했고, 친박계 인사는 “구도나 환경이 야당에 유리한 것이 재·보선인데, 사람 하나로 바뀌겠느냐”고 반문했다.
친박계의 한 재선의원은 “박 전 대표가 선거전에 나오고 안 나오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청와대가 국정지지율이 오른다고 세종시 수정안 등 여러 아젠다를 퍼부어놓고 표를 얻을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선거 패배의 원인은 결국 국정운영 문제에 있다는 말이다.
<이용욱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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