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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유족들과 비통함을 함께하라

화이트보스 2009. 11. 17. 11:21

일본인 유족들과 비통함을 함께하라

  • 김미경 히로시마 평화연구소 부교수

입력 : 2009.11.16 22:06 / 수정 : 2009.11.16 23:17

김미경 히로시마 평화연구소부교수
지금 일본 전역은 부산 사격장 화재사건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있다. 안전은 일본인들에게 생활방식의 일부다. 1년 평균 20회 이상 태풍이 지나가고 미리 예방할 수 없는 지진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이들에게 안전 의식은 지나칠 만큼 철저하다. 동네마다 대피시설이 있고 조금이라도 안전에 이상이 있을라치면 모든 대중교통의 운행은 중단되고 공중파 방송에선 그 상세한 내용을 일정 간격으로 알려준다.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의 통계에 의하면 매년 700만명의 일본인이 동아시아를 여행하고 그중 250만명이 한국에 간다. 1년 동안 그들이 해외에서 쓰는 여행경비는 3600만달러를 넘는다. 미국·중국 다음으로 인기 행선지가 한국이다.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풍 속에 서울은 물론 중·소도시 여행도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을 소개하는 일본 TV 화면에 가감 없이 비치는 일상 모습에 가끔 움찔할 때가 있다. 거의 안전과 청결에 관한 내용이다.

한국의 지방도시를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운전기사가 탑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는 요청을 하지 않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긴장한다. 운전 중의 끼어들기, 차선 바꾸기 등의 곡예운전에서도 많이 놀란다. 이런 모습이 인명 경시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한국 요리를 소개하는 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삼계탕으로 유명한 식당을 소개하는 화면에 구겨진 채 나뒹구는 흰색 화장지가 어두운 골목길과 대비됨으로써 그 동네가 왠지 퀴퀴하고 침침할 것 같은 불쾌함을 일으킨다. 유명 백화점의 젓갈 코너 소개도 마찬가지다. 맛보기용 수저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일회용임을 알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깨끗이 폐기처분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었다. 산 낙지로 유명한 도시를 소개하는 프로에선 갓 잡힌 낙지가 맨바닥 위를 기어다니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됨으로써 왠지 나중에 먹을 요리가 청결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 남았다.

한국 땅이 내뿜는 에너지와 정열 그리고 사람들의 따스함과 친절만으로 관광 마케팅 하기엔 역부족이다. 지금은 엔고(円高) 때문에 더 많은 일본인이 한국으로 오고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가치 마케팅을 해야만 한다.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발걸음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안전과 청결이라는 요소를 더욱 확실히 보태야 한다. 보글거리는 찌개 앞엔 각자 덜어 먹을 수 있는 국자와 작은 사발이 꼭 있어야 하고 삼계탕이나 갈비처럼 뼈를 발라 먹는 식탁엔 뼈를 담을 그릇과 물수건이 필수다. 안전을 위한 여러 조치도 일상화시켜야만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들이다.

이번 부산 사격장 사고에 어떻게 대처해야 일본인들의 발걸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일단은 사고의 전말을 있는 그대로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 만에 하나 미심쩍은 부분이 나중에 드러난다면 한번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는 무척 힘들어진다. 일요일 오후 부산 화재현장에 도착한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그리고 가슴 깊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라. 졸지에 타국에서 남편과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잃어버린 이들의 비통함을 같이 나누고 위로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부부처는 일본의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해서 한국에서 일어난 불상사를 최선을 다해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당부한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인정한 후 수년이 지나도록 일본인들은 억울하게 끌려간 동포문제를 되뇌며 잊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재일동포들이 습격당한 사건이 500여건을 넘는다. 이젠 부산에서 일본인 관광객 7명이 사망함으로써 한·일 간 외교관계는 물론 재일동포들도 긴장하고 있다. 제발 이 사고가 잘 마무리되기만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