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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억 빼돌린 朴부장의 '미소'

화이트보스 2009. 12. 11. 10:42

1900억 빼돌린 朴부장의 '미소

입력 : 2009.12.11 03:02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밥도 잘 먹고…."

8일 서울 성동구치소에서 만난 동아건설 전 자금부장 박모(48)씨는 편안하고 여유가 넘쳐보였다. 솔직히 놀랐다. 회한과 자책에 찌들었거나, 최소한 초췌한 모습일 줄 알았다.

박씨는 2004년 9월부터 올 6월까지 회사 공금 1898억원을 몰래 빼내 그중 절반 가까운 액수를 도박과 주식투자로 날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훔친 돈은 동아건설이 빚 갚으려고 은행에 묶어둔 돈이다. 동아건설은 법정관리를 받고 간신히 도산위기를 넘겼다. 2008년 현재 자본금 6652억원에 연매출 1735억원이다. 동아건설은 박씨가 상고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이다. 회사가 또다시 휘청할 수 있는 금액을 탕진해 놓고, 구치소에 들어앉은 박씨는 "짬이 나면 성경과 금강경을 읽는다"고 했다. 그는 구치소가 나눠준 감색 수의(囚衣) 대신, 영치금으로 구입한 은은한 하늘색 수의를 입고 있었다. 구치소가 아니라 요양원에라도 들어온 사람 같았다.

그는 구치소 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로 자신이 사회에 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길게 설명했다. "잡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술을 마셔도 잠이 안 왔다"는 얘기였다. 불안감을 초래한 원인인 범행 그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뉘우치는 것 같지 않았다. 자기 때문에 까맣게 속이 타들어갔을 옛 동료들에 대해서도 무심해 보였다.

면회 시간이 끝나자 그는 "편지 써요, 편지"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편지를 주고받자는 얘기였다. 구치소 생활이 무료했던 걸까. 지난 5년간 그는 한편으론 돈을 훔치고, 다른 한편으론 그 돈을 탕진하느라 분주하게 살았다.

이날 박씨는 "모든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던지면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며 빠져나갔다. 그가 안부를 궁금해한 사람은 함께 도피했던 회사 여직원 A씨(32)뿐이었다. A씨 얘기를 할 때만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30년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아건설 임직원 300여 명의 안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